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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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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거리- 강지현(편집부 차장)

  • 기사입력 : 2019-0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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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대개 직장 동료나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웃으며 대화하고, 작은 친절에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이가 가까워지면 상황은 역전된다. 가족과의 관계만 봐도 그렇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미간부터 굳어진다. 입에선 화살촉처럼 뾰족한 말들이 쏟아진다. 밥상머리는 침묵으로 이어지고, 대화는 종종 싸움으로 끝난다.

    ▼‘당신과 나 사이’의 저자 김혜남은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수천 명의 환자들을 만났다. 모두 마음이 아파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환자들을 가장 아프게 한 사람은 놀랍게도 그들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엔 ‘거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는 적절한 거리 말이다.

    ▼그렇다면 타인과 나 사이엔 얼마만큼의 거리가 필요할까.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실험을 통해 밝혀낸 인간의 공간 사용법 4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가족·연인처럼 ‘밀접한 거리’는 0~46㎝, 친구처럼 가까운 ‘개인적 거리’는 46㎝~1.2m, 회사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는 1.2~3.6m, 대중과의 ‘공적인 거리’는 3.6~7.5m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유형에 따라 적절한 거리를 둬야 건강한 사이가 유지된다는 의미다.

    ▼거리 두기는 인정과 존중의 다른 말이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겨울 고슴도치는 온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지만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숲 속에 빽빽이 들어찬 나무도 가까이서 보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란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러해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강지현 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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