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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을 찾아서] (5) 농촌마을 약사 김병수씨

“약국 문 빨리 닫았더니 새로운 삶이 열렸어요”

  • 기사입력 : 2019-02-2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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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설이지 말고 지르고 보세요. 뭐든지 처음이 힘듭니다. 아니면 안 하면 되지요.”

    이번에는 일반적인 직장인이 아닌 약사를 만났다. 어찌 보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달랐다. 지금까지 만난 약사들과는 뭔가 특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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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수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마을에 유일한 약사= 주인공인 김병수(44)씨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에서 약국을 운영해오고 있다. 지인을 통해 약국을 인수해 10년 넘게 운영해오고 있는 그는 처음 인수했을 당시 밤 10시까지 영업을 했다고 운을 뗐다. 10시에 문을 닫으면 집에 11시 넘어 도착하고, 한동안 약국 영업에 매달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고 전했다. 이에 가족들도 불만이 많아 괜히 약국을 인수했나 싶은 생각이 든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후에는 마을에 약국이 하나밖에 없다 보니 주민들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약국을 운영해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차 지치고 힘들어져 영업시간을 밤 9시로 단축하고, 이후 다시 8시로 시간을 줄였다고 전했다. 그리고 저녁 7시까지 운영해오다 최근 인근 병원도 6시에 마치는 분위기여서 약국도 병원의 영업시간에 맞춰 마치게 되면서 개인적인 여유를 즐길 시간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마을에서 유일한 약국이다 보니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이에 주민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털어놨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김씨는 약국의 영업을 빨리 끝낸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고 전했다. 마을에 약국이 한 군데밖에 없다 보니 개인적으로 급한 일이 생겨도 약국 문을 쉽게 닫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쉬고 싶다고 해서 쉴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고 했다. 최근에는 지인의 장례식장에도 가봐야 하는데 못 가봐서 미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더욱 중요한 건 ‘약은 꼭 약사의 손을 거쳐야 된다’는 신념을 절대 저버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약제실의 좁은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답답하고 힘든 심정을 전했다. 그렇다고 직원의 손에 맡길 수는 없는 중요한 일이기에 책임감을 갖고 마을 주민들의 건강지킴이 노릇을 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로는 소박한 시골 인심에 마음이 훈훈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며, 과일이나 각종 채소 등을 종종 가져다주는 손님을 볼 때면 피곤했던 일상생활에 활력소가 된다고 말했다. 창원시 진해구에서 동읍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이 마을의 손님들마다 인정이 넘쳐 이제는 정이 들어 마을주민이나 다름 없다고 미소를 지었다.

    ▲목공에 빠지다= 김씨는 평소 목공에 관심이 많았지만 배울 시간이 없어 엄두도 못 냈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목공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직접 가구를 만드는 매력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병원과 약국 직원에게도 권해서 같이 배울 정도로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흐뭇해했다. 목공의 매력에 대해 그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으면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게 되고, 나무를 손질하면서 배어나오는 특유의 향과 깎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숙원이었던 일명 ‘벙커침대’를 제작했다며, 집에 귀가하는 또 다른 의미가 생겼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벙커침대란 2층 침대인데 침대 아래에 의자와 책상이 있는 구조로, 아들을 위해 만든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하면서 멋쩍어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워라밸이라고 하지만 당신은 ‘워라라밸’이라며 일보다는 목공에 더 빠져 있는 것 아니냐며 아내가 놀리기도 한다”는 그는 목공을 배우면서 삶의 또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만들어오는 작품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며 종종 아내의 주문이 반갑기도 하다고 말했다. 아내가 주문을 하면 급히 또 공방장과 논의를 하고 모르는 것은 또 배우면서 하나하나 만들어 간다고 부연했다. 또 새로운 습관이 생겼는데 집에 뭔가 필요하다 싶은 가구가 생각나면 아내와 함께 상의 후 디자인 등을 구상하고 어떻게든 만들어 가져다놔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가구와 씽크대 등이 약간 문제가 생기면 직접 고치기도 해 목공을 배우길 잘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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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수씨가 창원시 성산구 공방에서 목공 작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만드는 건 다 좋아= 그는 어릴 때부터 늘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뭐든지 뜯어보고 관찰해 고장낸 장난감도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하며 한동안 웃었다. 그래서 목공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만들거리를 찾아 새롭게 배우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에는 배우고 있는 목공과 접목해 블루투스로 연결하는 스피커와 휴대폰 무선충전기 등도 만들고 있는 중이라며 전기·전자 쪽에도 관심을 갖고 다양한 작품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배우기가 쉽지 않았다”며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공유로 인해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특히 유튜브에서 검색만 하면 쉽게 관련된 자료 영상을 찾을 수 있다”며 “얼마 전에는 유튜브에서 본 영상을 참조해 아이들의 스마트폰 액정을 직접 교체해 주기도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 3D 프린터도 집에 구비해 놓고 이를 이용해 열쇠고리 등 시범 삼아 이것저것 많이 만들고 있다며, 직접 만든 작품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직접 만든 것을 SNS를 통해 공유를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재미에도 푹 빠져 있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또다른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른 약국에서 약사 일을 하는 아내와 함께 초등학생 아들 둘을 키우는 그는 가족들을 향한 애정은 남들과 같다며, 최대한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도 좋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약사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공계에 관심이 많아 기계나 전기·전자 계통의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워라밸이 별거 있나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보는 거, 그게 다 아닌가요?”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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