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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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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34) 제24화 마법의 돌 34

“강물도 깨끗해요”

  • 기사입력 : 2019-03-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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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튿날 열차를 타고 프라하로 향했다. 열차는 베를린 중앙역에서 출발했다. 비가 오고 있어서 더욱 낭만적인 기분이었다. 도시를 벗어나자 푸른 들판이 차창을 지나갔다. 동화 같은 풍경에 가슴이 설레었다. 이정식은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자신의 인생에서 마치 휴가를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한국의 비서실과 미국 회사에서 이따금 전화가 오기는 했으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포터, 어때요?”

    서경숙이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기분이 좋은지 그를 포터, 짐꾼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좋아.”

    이정식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차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색색의 우산을 쓰고 다니고 들판이 비에 축축하게 젖었다.

    “나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아? 젊은 사람끼리 다녀야 하는데.”

    이정식은 때때로 서경숙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여행은 젊은 연인과 같이 다녀야 한다. 자신이 그룹 회장이라고 해도 나이 때문에 미안한 것이다.

    “아니에요. 나 혼자 왔으면 쓸쓸했을 거예요.”

    “무슨 일이든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야기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다 해 줄게.”

    서경숙에게 보상해주고 싶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서경숙이 잘라 말했다. 이정식은 서경숙의 손을 잡았다. 그녀와 두 번이나 육체의 사랑을 나누었기 때문에 친밀감이 들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드릴게요.”

    “알았어.”

    이정식은 시트에 등을 기댔다. 국제열차는 검문이나 비자도 없이 프라하를 향해 달려갔다. 끝없이 넓은 포도밭을 지나가기도 하고 강을 따라 달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드는 것은 사람들의 얼굴이나 풍경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낯선 언어 때문이었다.

    독일에는 포도밭이 많았다. 체코를 향해 가는 동안 포도밭이 계속 차창을 지나갔다.

    체코로 열차가 들어가자 도시와 집들의 지붕이 낮고 붉은색이 많았다. 풍경이 또 달라지고 있었다.

    프라하에 도착한 것은 점심때가 못 되었을 때였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쉬었다. 커피를 마시고 옷을 갈아입었다. 한 시간쯤 쉰 뒤에 호텔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다행히 프라하는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날씨 좋다.”

    이정식은 거리를 둘러보면서 흡족했다. 체코에 미인이 많다고 하더니 여자들도 예뻤다.

    “강물도 깨끗해요.”

    프라하에는 볼타바강이 흐르고 있었다. 볼타바강은 너비도 한강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고 깊지도 않았다. 그러나 강물은 깨끗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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