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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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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39) 제24화 마법의 돌 39

“별로 배울 것이 없습니다”

  • 기사입력 : 2019-03-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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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은 1912년에 대구 근방의 달성에서 태어났다. 이재영의 아버지 이학수는 도(道)에서 손꼽히는 부농은 못 되고 군(郡)에서는 손가락 꼽힐 정도가 되어 풍족하게 살았다. 대대로 막대한 토지를 물려받았는데 그들이 전주 이씨, 왕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성(王姓)이기는 했으나 수백 년 전에 파가 갈라졌다. 그래도 왕성이니 지방에서는 크게 행세할 수 있었다.

    머슴도 여럿이 있었다. 이재영은 어릴 때 서당에 다니면서 천자문을 떼고 한학을 공부했다. 조선인이 세운 소학교에도 다녔다.

    소학교를 마친 뒤에 대구에 가서 중학교에 입학했다. 신문물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를 마친 뒤에는 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23년에 설립된 경북사범학교가 대구사범학교로 이름이 바뀐 1929년의 일이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이학수처럼 앞에 나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학교 선생이 될 생각도 없었다.

    “어째서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냐?”

    이학수가 무릎을 꿇게 하고 물었다. 이재영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별로 배울 것이 없습니다.”

    이재영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무엇을 할 생각이냐?”

    “일본에 가서 신문물을 살펴보겠습니다.” “알았다. 구경이나 하고 오너라.”

    이학수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이재영에게 말했다. 이학수는 세상에 급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느긋했다.

    “어르신, 비가 오는데 걸음을 서두르시지요.”

    늙은 머슴이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걷는 이학수에게 말했다.

    “사람 참! 천천히 가면 뒤에 오는 비만 맞으면 되는데 뛰어가서 앞에 오는 비까지 맞으려고 하는가?”

    이학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학수의 느긋한 성품을 말해 주는 일화였다.

    ‘비가 올 때 뛰어 가면 앞에 오는 비까지 맞는 것인가?’

    이재영은 어릴 때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무엇엔가 속은 듯한 기분이었다. 어쨌거나 이학수는 항상 느긋했고 이재영도 그 성품을 절반쯤 닮았다.

    이재영은 일본에 가서 동경제국대학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돌아와 대구에 삼일상회를 열었다. 잡화상인데 쌀도 팔고 건어물도 팔고, 면직물도 팔고 닥치는 대로 팔았다.

    “양반의 자식이 어째서 장사꾼을 하는 것이냐?”

    갓 쓰고 도포자락 펄럭이는 집안 어른들이 야단을 쳤다. 작은아버지 이상수가 걸핏하면 이재영에게 호통을 쳤다.

    “작은아버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공자왈 맹자왈 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학문이라도 배워야 할 것이 아니냐?”

    “신학문 배우면서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럼 너는 무엇이 되려고 하느냐?”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될 것입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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