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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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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5%의 농촌소설- 김종광(소설가)

  • 기사입력 : 2019-03-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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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은 ‘농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사회’다. 각기 생각과 습성을 가진 농민과 ‘농가인구(현재 농가로 정의된 개인농가에서 취사, 취침 등 생계를 같이하는 사람)’와 비농업인이 가족끼리 동네사람끼리 면·읍민끼리 군·시민끼리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곳이다.

    소설은 당대의 사람과 세태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농촌인구가 마구 줄어들면서 농촌소설도 마구 줄어들었다. 급기야 농가인구수는 242만, 농가인구 비율은 4.7%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임촌, 어촌 사는 인구를 더하면 5% 정도 된다. 신기하게도 21세기에는 농(어)촌소설도 5% 정도 생산되고 있다.

    5%는 정말 바라보기 나름인 듯하다. ‘농촌소설 쓰는 작가가 씨가 말랐다’다거나, ‘농촌소설이 멸종했다’고 볼 수도 있다. 씨가 마른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다. 소설 자체를 읽는 한국인구가 5%가 될까 말까 한 판이다. 그 소수정예 독자가 그 많은 소설 중에 농촌소설을 찾아 읽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심지어 농촌소설 좀 쓴다는 작가도 자기만 농촌소설을 쓰는 줄 알 정도로 안 읽는다.

    읽히는 문제와 상관없이, 농촌소설은 필요한 만큼 생산되고 있다고 봐도 좋을 테다. 5%의 농촌을 5%의 작가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5%의 농촌소설이 안 읽히고 안 알아주는 것 다음으로 섭섭한 것이 ‘다름’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촌만 나왔다 하면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제강점기소설 같다고 여기는 분이 태반이다. 그나마 소설을 읽은 분들도 ‘사투리를 썼으니 이문구 따라했네’라는 식이다. 2000년대에도 여러 작가가 저마다 고유의 문체와 시각으로 5% 농민의 현재와 사상과 세태와 생활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개별성과 고유함을 알아봐주기는커녕, 모조리 ‘이문구소설’ 같다고 매도당하고 있다.

    나는 아이돌 그룹 구성원이 다 똑같아 보인다. 나는 농촌소설에 관심이 많고 사랑하니까 농촌소설 쓰는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각기 다름을 아는 것일 뿐이다.

    농촌소설에 관심 없는 분에게 농촌소설은 내가 구별하지 못하는 어떤 아이돌 그룹의 1인일 뿐이다. 대중독자가, 사투리 나오고 농촌 나오면 이문구소설 같네,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아니, 감사해야 마땅하다. 고 이문구의 ‘우리 동네’를 읽어본 분도 정말 귀한 세상이다.

    그런데 농촌소설은 진짜로 왜 안 읽히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라면 5%는 읽혀야 되는데 말이다. 5%의 농촌소설이 진짜 농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농촌소설은 소설의 속성상 농촌의 이면과 그늘을 묘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중이 듣고 보고 읽고 싶어 하는 농촌얘기는 예능 같은 것이다. 예능(藝能)이 어째서, 연예인이 일반인 대신 먹어주고, 얘기해주고, 웃긴 짓 해주고, 사연팔이해주고, 감성팔이해주고, 사회봉사해주고, 군대생활해주고, 세계여행해주고, 낚시해주고, 1박 2일 놀러가주고 하는 프로그램들을 뜻하게 된 걸까?

    아무튼 예능프로의 8할이 농어촌 찾아가서 웃다 놀다 먹다 힐링하다 오는 것이다. 한국 농촌이 모자라 전 세계의 오지 농촌을 찾아 다닌다. ‘시사교양’이나 ‘다큐’를 표방하지만 결국엔 ‘예능’하는 프로도 허다하다. 농어촌에 사는 것이 얼마나 ‘극한’스러운지 보여주는 ‘리얼다큐’들도 농어촌이 아니면 제작조차 힘들다.

    농촌소설은 5% 이하인데, 농촌예능·리얼다큐는 80% 이상인 묘한 시대다. 농촌소설은 지금의 농촌에서 농가인구와 그 외인이 얽히고설켜 치열하게 사는 삶이 기록돼 있다. 영화로 치면 ‘다큐영화’일 수밖에 없다.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농촌은 그런 진짜농촌이 아니라 먹방화되고 힐링화되고 예능화된 판타지농촌이다. 나는 농촌예능·리얼다큐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조작된 농촌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대중이 보고 싶은 것을 담았을 뿐이다. 농촌을 동물원이나 식물원처럼 그린 예능을 볼 때마다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진짜 농어촌을 다룬 소설 또한 5%는 꾸준히 생산돼 대중이 읽어주든 말든 알아주든 말든, 진짜 지금의 농촌을 기록해나갈 것이다. 농어촌의 최후까지.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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