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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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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53) 제24화 마법의 돌 53

“쌀이 얼마나 필요해요?”

  • 기사입력 : 2019-04-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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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요?”

    “이번 일은 나한테 맡기세요.”

    “무조건 당신한테 맡기라고? 대체 어떻게 할 거요?”

    “나한테 한번 맡겨보세요.”

    이재영은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는 류순영에게 미곡창고를 맡겼다. 마음 한편으로는 찜찜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자 류순영은 대구 시내 곳곳에 커다란 벽보를 붙였다. 쌀이 필요한 사람에게 쌀을 빌려줄 테니 대신동 창고로 오라는 것이었다.

    ‘장사를 완전히 말아먹을 작정인가?’

    이재영은 불안했다. 이재영이 사 모은 쌀은 자그마치 2000석에 이르렀다. 류순영은 창고 앞에 책상 하나를 놓고 장부책을 펼치고 기다렸다. 이내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쌀 빌리러 왔어요?”

    류순영이 지게를 지고 와서 쭈뼛거리는 30대 장한에게 물었다. 장한도 쌀을 빌려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도 많았다. 모두 해어진 옷을 입고 있는 빈민들이었다.

    “예.”

    사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의 누구예요?”

    “대신동 박불출입니다.”

    류순영이 주소와 이름을 적었다.

    “쌀이 얼마나 필요해요?”

    “다섯 말입니다.”

    “좋아요. 여기 다섯 말 내주세요.”

    류순영이 창고에 있는 직원에게 지시했다. 직원이 쌀 다섯 말을 자루에 담아 박불출에게 내주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쌀을 빌려주는 것이 사실인지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다.

    “언제 갚으면 됩니까?”

    박불출이 고개를 숙이면서 물었다.

    “농사가 잘되어 쌀을 넉넉하게 수확하면 그때 갚으세요.”

    “이자는요?”

    “알아서 갚으세요.”

    류순영은 그런 식으로 대구 사람들에게 쌀을 빌려주었다. 빈민들이 차츰차츰 쌀을 빌려 가기 시작했다. 한 말을 빌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두 말을 빌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쌀을 빌려 가 양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떡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었다.

    “어째서 이자도 없이 쌀을 빌려주는 거지?”

    사람들은 류순영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했다. 류순영 때문에 이재영이 망할 거라는 사람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처복이 있어요.”

    이재영이 불안해하자 류순영은 생글생글 웃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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