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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 아사고인(我思古人) - 나는 옛날 훌륭한 사람을 생각한다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9-04-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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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4월 9일(음력 3월 5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께서 70년 생애에서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출발하신 날로부터 꼭 450년 되는 날이다.

    유학은 본래 현실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자신을 수양한 뒤 다른 사람까지 바로 되게 만드는 학문이다[修己治人]. 가장 이상적인 궁극적 목표는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에 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유학 공부의 최종 목표다. 그러니 선비가 은거만 고집하는 것은 유학의 원래 취지는 아니다.

    퇴계 선생은 1534년 34세 때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나갔다. 10년 남짓 됐을 때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있어, 훌륭한 사람들이 권세를 잡은 간신들에게 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가거나 파면당했다. 선생도 간신 이기에게 몰려 삭탈관작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은 자신의 이상을 펼 수 없는 조정에 있기 싫었고, 성현의 참된 공부를 깊이 하고 싶어 계속 사직하고 고향에서 지내고자 했다. 그러나 명종(明宗), 선조(宣祖)는 벼슬로 계속 불러냈다. 대략 70여 번 벼슬을 내렸고, 불려 서울로 온 것이 10여 회 정도 된다.

    선생이 벼슬에서 계속 물러나려고 한 가장 큰 이유는, 임금이 불러올리려고만 했지, 진정으로 자기와 함께 학문을 강론하거나 올바른 정치를 하려는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퇴계 같은 훌륭한 대학자를 불러 함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명분만 세우려는 임금의 마음자세에 실망하여, 더욱더 고향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여러 차례 간청 끝에 1569년 음력 3월 4일 마침내 선조의 허락을 받아 그 이튿날 봉은사(奉恩寺)에서 자고 남한강을 따라 배를 타고 와서 죽령을 넘어 17일 도산서당(陶山書堂)에 도착했다.

    금년 기해(己亥)년이 선생께서 마지막 귀향하신 지 꼭 450년 되는 해이다. 이 의미 깊은 해를 그냥 넘길 수 없다고 생각해, 작년 봄부터 도산서원 김병일(金炳日) 원장이 “선생의 자취를 따라 선생의 정신을 배우며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도산서원 참공부모임 회원들 및 도산서원 유림들이 적극 찬성해 일이 시작됐다. 많은 분들이 봉사하고 치밀한 계획을 수립해 마침내 오늘 9일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는다.

    요즈음 장거리 걷기행사가 많이 열린다. 단순히 걷기만 해서는 운동은 될지 몰라도 별 의미가 없다. 선생의 학행 등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선생을 배우겠다는 뜻을 확고히 세우고 걸으면, 큰 의미가 있고, 큰 공부가 될 것이다.

    선생께서 자신의 묘비 명(銘)을 지으셨는데, 거기에 “내가 옛 사람 생각하니, 옛 사람들이 정말 내 마음 얻었네[我思古人, 實獲我心]”라는 구절이 있다. ‘선생께서 자기를 따라 배우려는 후학들의 마음을 이미 이해하고 계시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我 : 나 아. *思 : 생각 사.

    *古 : 옛 고. *人 : 사람 인.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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