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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벼슬-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19-04-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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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34년(조선 중종29) 34세에 과거 급제한 퇴계 이황은 선조까지 세 임금의 부름을 받았다. 69세에 관직을 떠날 때까지 여섯 차례나 나아감과 물러남을 반복했다. 명종에게 올린 ‘무오사직소’에는 관직에 나갈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었다. 어리석음을 숨기고 벼슬 자리를 도적질하는 것, 병든 몸으로 하는 일 없이 녹만 축내는 것, 허명으로 세상을 속이는 것, 나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고도 벼슬하는 것, 맡을 일이 아닌데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남명 조식은 평생 관직을 사양하고 처사(處士)를 자처했다. 명종이 퇴계까지 보내 벼슬을 종용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단성(산청) 현감을 제수했지만 이마저 사양했다. 오히려 수렴청정과 외척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 ‘을묘사직소’를 올렸다. 남명은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고 인심도 떠났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문정왕후를 ‘궁중의 과부’로, 명종을 ‘선왕의 외로운 후계자(孤嗣)일 뿐’이라고 해 조정을 발칵 뒤집었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으로 시끌벅적하다.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인물을 임명 강행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등 온갖 의혹이 불거져 국민에게 괴리감을 안겼다. 문제는 지목받은 이들의 자세다. 흠결이 있다면 사양하는 게 도리다. 살아온 궤적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발탁만 되면 최대한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가문의 영광’에 눈멀어서는 안 된다.

    ▼남명처럼 목숨을 건 비판은 못하더라도 퇴계가 제시한 다섯 가지 요건에 견줘 스스로 관직에 나아갈지 판단해야 한다. 헛된 이름으로 세상을 속이고, 굴욕을 무릅쓰고 벼슬을 탐해서는 안 된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중국판 목민심서인 ‘신음어’는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잎새 하나만 보아도 그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고, 말 한마디만 들어도 그가 알고 있는 게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있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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