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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국민과 부족민과의 거리- 장성진(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4-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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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으로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결속이 견고한 집단은 국가이다. 그 결속의 바탕이 종교이든 민족이든 역사적 경험이든 이념화하는 것은 틀림없다.

    한국은 민족 관념을 바탕으로 고대국가를 형성해 그것이 역사적 경험으로 축적됐으며,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이민족의 식민 지배를 겪었고, 민생고라 불리는 생존의 위기를 국가 단위의 사업으로 극복한 나라이다. 따라서 국가 의식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어떤 형태의 모임이든 국가 또는 정치를 담론으로 삼는 관습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친족의 모임이나 소규모 친목회에서부터 특정 분야 전문가들의 회합에서조차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국가와 정치 담론으로 옮겨가곤 한다.

    이런 현상은 연령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바람직한가의 여부를 떠나서 이해할 만한 사안이다.

    프로 스포츠 선수의 개인적 승리에도 방송은 국민 여러분에게 기뻐해 달라고 외쳤으며, 큰 재해가 있을 때마다 정부는 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극복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앞뒤 가리지 않고 기뻐해 주고 동참해 온 국민이 국가사를 일상의 관심으로 삼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오늘날 생활의 단위가 빠른 속도로 분화하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사회관계망을 활용한 새로운 결속체가 수없이 많이 생기고, 개인들은 능동적으로 여기에 가입해 살아간다. 이른바 ‘부족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부족사회론은 30년쯤 전 북유럽의 사회학자들이 미래사회를 전망하고 진단해 붙인 이름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급격히 발달하면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이든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정보와 지식은 물론 감성까지 공유하면서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간다는 뜻이다.

    이들의 결속은 기존의 혈연이나 지연으로 인한 인간관계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해 구성원을 몰입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들이 전망한대로 한국은 언어, 민족, 자연환경 등 단일한 요소가 많아서 인터넷 발달 여건이 좋고, 실제로 그 활용면에서 앞서가는 국가이다. 이로 인해 관심 영역에 따른 수많은 부족이 생겼다.

    가령 동일한 취미, 정치사회적 관심, 문화 예술 영역, 기술 등 삶의 어느 분야에서든 국내의 단체와는 물론 세계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최근에는 사회관계망 활용 지식이 늘어나면서 고령층들이 차츰 가담해 연령대와 계층이 확대되고 있다. 실로 거의 모든 국민이 현실의 시공간과 가상의 시공간을 공유하는 상태에 다가섰다고 하겠다.

    인터넷 공간은 부족적 결속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이 속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소통하며, 불평이나 갈등의 소지가 커질 때는 빠져나옴으로써 그것이 해소된다. 애당초 부족사회란 원시적 자연 환경 속에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부족과 부족 사이에는 넓은 공간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딱히 누구의 영역에 속하지도 않거나, 각박하게 마주치지 않고 공유하는 영역이 넓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부족사회적 점유 방식과 가상 공간의 자유로움을 누릴수록 갈등을 경험하고 해소하는 과정에 대한 훈련의 기회가 부족해지기 쉽다. 이 점이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충동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현실의 시공간은 도시적 세계이다. 비록 환경으로는 농촌일지라도 영역을 점유하는 방식이나 생활 태도는 이미 도시적이다. 나의 영역이 아닌 곳은 타인의 영역이며, 나의 행동은 타인과 직접 접촉된다.

    국가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삼는 지극히 현실적인 오프라인 생활과, 부족적 결속으로 분화된 온라인 생활을 동시에 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겪는 두 세계의 간극은 매우 위태롭다. 그 접점이자 융합의 공간으로서 시민적 교양의 함양과 훈련은 더욱 절실하다.

    장성진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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