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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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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66) 제24화 마법의 돌 66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할까?”

  • 기사입력 : 2019-04-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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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중국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이지만 조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일본인들의 눈빛이 살벌해지고 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신문은 매일같이 전쟁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일본이 대단하네. 작은 섬나라가 대륙과 전쟁을 벌이고 있어.”

    대구에서 미곡상을 하는 김일경이 이재영의 가게에 와서 말했다. 김일경은 이재영과 나이가 비슷했다. 조선인이면서 하오리를 입는 등 일본인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이재영은 주로 양복을 입고 중절모를 썼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 할까?”

    “좋지.”

    이재영은 김일경과 약속했다. 며칠 전에 그에게 술을 얻어 마셨다. 그는 할 일도 없이 이재영의 상회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돌아갔다. 이재영은 그가 돌아가자 대구 본정통 뒷골목에 있는 요정에 예약을 했다. 거리에 일본군이 행군해 가는 것이 보였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대구에도 군인이 많아지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경성에 올라갔던 류관영이 찾아왔다. 류관영은 내일 단양에서 시멘트 기술자를 만나기로 했으며, 내일 아침 일찍 단양으로 가겠다고 했다.

    “수고했네. 일본인은 어떻게 하겠대?”

    “전쟁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사나 해두게. 집에 들어가서 저녁 먹고. 나는 저녁에 약속이 있네.”

    이재영은 류관영을 집으로 들여보냈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이재영이 요정 <미림>에 도착한 것은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미림은 대구의 고급 요정으로 일본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방에는 이미 김일경과 일본인 후지와라가 앉아 있었다. 후지와라는 대구에서 일본상품을 도매하는 상인이었다. 일본제품들이 대부분 조선제품보다 질이 좋아 고급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로 알려져 있었다. 오사카에서 일본 제품을 부산으로 수입하여 전국에 판매했다. 장사꾼이라 조선인에게도 친절했다.

    “후지와라는 사람도 팔아먹는 놈이야.”

    후지와라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후지와라는 도매상을 하지만 고리대금업도 했다. 조선의 농민들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준 뒤에 돈을 갚지 못하면 딸을 빼앗아 일본인들에게 판다고 했다.

    이재영은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는 조선인들과 어울리려고 했다. 내선일체니 어쩌니 하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어서 오시오. 이상은 신수가 더욱 좋아졌소. 핫핫!”

    후지와라가 너털대고 웃으면서 이재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후지와라는 키가 크고 몸도 뚱뚱했다.

    “당치 않습니다. 어디 후지와라상만 합니까?”

    이재영은 허리를 굽히고 후지와라의 손을 잡았다.

    “최근에 단양을 다녀왔소?”

    김일경도 이재영과 악수를 나누었다. 김일경은 미곡상으로 대구에서 손가락 꼽히는 부자였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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