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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예술가는 동냥아치가 아니다- 김종광(소설가)

  • 기사입력 : 2019-04-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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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광 소설가


    예술에 ‘국민의 혈세’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을 테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쌀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들만의 행위에 왜 세금을 낭비한단 말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로또 등의 복권, 토토 경마 경륜 경정 강원카지노 같은 국가공인 ‘도박’, 술 담배 등에서 뜯어낸 나랏돈 중의 일부를, 예술에 쓰는 것을 너그럽게 보아주신다. ‘다양한 문화예술’을 통한 건전한 정신, 정서, 인식의 함양 또한 나라를 나라답게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

    옛날에 자식이 ‘예술’한다고 하면 부모님들은 화를 내셨다. “굶어 죽으려고 환장했니?” 예술가는 가난하고 굶주리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직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직업도 아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 대중이 아는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돈도 많이 버는 예술가도 1%는 된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며 나름대로 권위와 권력을 누리는 예술가도 5%는 된다. 예술가의 50%는 취미생활로 즐긴다.

    하지만 예술가의 40% 정도는 ‘직업예술가’로서 살기가 녹록지 않다. 잠잘 데 있고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만사 편안한 세상이 아니다. 예술가 또한 없으면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한 상황에 직면해야 할 때가 숱한 그것들을 갖추지 않을 수 없다. 직업예술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수입을 보면, 사실 그 본 예술행위로 버는 돈보다, 강의와 심사와 관련 알바 등의 부수입이 훨씬 많다. 이 생계형 예술가들이 바로 국가보조금 타 먹는 예술가들이다.

    ‘창작지원금’ 형태로 나오는 국가보조금은, 돈도 돈이지만 상당한 자족감을 준다. 내가 대중이 자기 돈을 직접 들여 소비해주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창작지원금을 탈 수 있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생산하는 진짜 예술가라고!

    공연예술 작품은 국가보조금을 받아야만 제작 자체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 3000만원 정도 지원받았을 때, 수십 명이 한두 달 이상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인건비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보조금 선정 사업이기 때문에, 일단 제작에 들어갈 수가 있고, 후원도 받을 수 있고, 대중의 참여를 얻어낼 수 있다.

    국가보조금은 예술가에게 계륵이거나 필요악이다. 받고 싶지 않지만 받지 않으면 예술이 불가능하다. 받고 싶다고 쉬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토록 예술가로 살기 어렵다는데 왜 그렇게 예술가는 많은지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하다. 국가보조금 받겠다고 경쟁하는 것부터가 왠지 서글프다. 국가보조금 받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예술가들도 있지만,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e나라도움’은 보조사업을 원활하게 수행하고, 보조금의 중복 부정수급을 방지하며, 보조금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보조금 관련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구축됐다고 한다. 말은 번드르르 좋은데, 실시 3년째, e나라도움시스템은 악명이 드높다. 공무원은 ‘써보니 참 편리한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예술가들에게는 고난도 수학문제나 다름없다.

    일단 지원할 때부터 쉽지 않다. 하다 하다 안 돼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예술가들이 수두룩하다. 지원대상자로 선정되면 배 부른 소리 같지만 더욱 난관이다. ‘예산 편성 교부 집행정산 등 보조금 처리의 모든 과정을 자동화, 정보화해 통합적으로 관리’하겠다는데, 이 ‘자동화, 정보화’가 예술가에는 산 넘어 산, ‘넘사벽’이다. 기획재정부와 재단의 담당공무원에게 여러 번 전화를 해 정말 큰 도움 받아서 겨우 해낸 이가 대부분이다. 예술가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감내해야만 마침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기재부는 ‘지원하되 간섭을 넘어 통제’하려는 것일까? 예술가가 그 예술에 충실해야지 보조금 타내는 지엽적인 과정에 정열을 낭비해서야 되겠는가. 꼭 필요하다면, 예술가도 좀 쉽게 할 수 있도록, 간소화 간략화되기를 촉구한다. 일단 ‘도움’부터 다른 말로 바꿨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무슨 동냥아치 취급하는 말 같다. 예술가는 국민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이들이지 거지가 아니다.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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