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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파티’를 끝내야 한다- 서영훈(문화체육부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9-05-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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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승리의 별명을 ‘한국의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던가. 이를 줄여서 ‘승츠비’라고도 했던가. 1925년 피츠제럴더가 쓴 소설로 몇 해 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와 승리, 그 둘은 젊고 부자며 또 사치스러운 파티를 자주 열었다는 점 외에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그래서 ‘한국의 위대한 개츠비’라는 표현은 승리가 많은 돈을 뿌려가면서 파티를 열었던 의도를, 파티에서 벌어졌던 추악한 사건들을 감추는 장치가 됐을 수도 있다. 설사 그런 장치를 의도적으로 고안해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런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게 됐다.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이사가 손님을 폭행한, 단순하게 보이던 그 사건과 이후 벌어진 마약 거래 등의 폭로가 없었다면 말이다.

    승리가 클럽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위대한 캐츠비’를 떠올리게 하는 파티를 열고, 그 파티에서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차츰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파티를, 개츠비가 돈 많은 톰과 결혼한 데이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연 파티와 연결시키는 것이 온당한 일은 아니다. 승리의 파티를 개츠비의 파티와 연결 지은 것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인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개츠비의 파티가 사랑을 위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파티였다고 미화하려는 생각은 띠끌만치도 없다.

    승리의 파티에서 불거져 나오는 성접대는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그런 ‘데자뷔’가 아니라, 실제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의 반복이라는 의심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이른바 ‘김학의 성범죄 사건’이나 ‘장자연 성폭력 피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사건과 승리의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 여성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는 데에 맥을 같이하는 듯해서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김학의가 갔던 별장에서 녹화된 동영상이나, 장자연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남긴 유서에 기록된 그 일들이 엄정한 수사를 통해 낱낱이 밝혀졌다면, 승리의 파티는 열리기 힘들었을 수도 있는 터이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아무리 자신에게 가해졌던 성폭력을 폭로한다고 한들, 가해자의 행위가 심판받지 않는다면 그 폭력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 사건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의 신체를 이용한 범죄의 한 단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길거리에서든 공중화장실에서든, 아는 사이든 모르는 사이든,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고 유포하는 행위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촬영한 영상물은 유희의 대상이 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을 언어적으로, 또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쁜 마음을 가진 상사의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힘을 가진 자가 힘 없는 여성을 괴롭히는 이런 일들이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의 나라에서도 발생한다고 하여 잘못이 가벼워지거나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승리와 김학의 성범죄 사건, 그리고 장자연 성폭력 피해 사건을 수사를 통해 철두철미 파헤치고, 범죄 경중에 따라 합당한 처벌을 해 여성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줄여나가는 것이 이 세 사건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부과한 책무다.

    서영훈(문화체육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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