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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 선사문집(先師文集) - 돌아가신 스승의 문집.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 기사입력 : 2019-05-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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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 권이라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작은 책이라도 한 권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자료를 모으고, 편찬기준을 정해 취사선택하고, 정서하고, 교정 몇 번 보고 해서, 겨우 인쇄에 부칠 수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보수를 안 받았다. 스승의 학덕을 흠모해서 찾아가 배우는 제자들이니, 금전적인 거래가 있을 수 없었다. 그 대신 큰 학자인 스승이 별세하면 제자들은 스승의 행적을 정리해 행장을 짓고 비석을 세우고 문집을 간행해 내고, 추앙할 공간인 서원을 세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 1501~1570) 선생은, 평생 300여 명의 제자를 길렀다.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당연히 위의 세 가지 사업을 다 했다.

    그러나 문집의 양이 워낙 많아 편집 간행하는 데 30년이 걸렸다. 그동안 선생의 아들도 돌아가고, 손자도 돌아가, 제자들이 주관했다. 경제적인 비용도 만만찮았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해서 최소 30억원의 경비가 들 정도였다.

    문집 간행이 지지부진하자, 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은 오로지 스승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서 선조(宣祖) 임금에게 상소를 하여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간행 일을 주관했다.

    그 상소문 가운데 일부는 이러하다.

    “스승님께서 돌아간 뒤로 글이 흩어져 없어진 것이 많습니다. 그 손자 이안도(李安道)가 모으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서 또 요절하게 됐습니다. 집안에 이 일을 관장할 만한 다른 자제들이 없습니다. 그 글이 지금에 와서 없어지거나 묻혀 세상에 전해지지 않게 됐습니다. 신이 남 몰래 이 일을 매우 걱정해, 삼가 고을의 여러 선비들과 더불어 교정하고 정서했지만, 아직도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만약 임금님의 거룩한 은혜를 입어 물러나는 것을 허락받아 죽기 전에 이 일을 거의 완성한다면, 하나의 큰 다행한 일이겠습니다.”

    월천이 물러난 지 14년 뒤 퇴계의 문집은 30책으로 간행됐다. 만약 지금 우리나라에 퇴계의 문집이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학문적으로 사상적으로 너무나 빈약한 문화의 후진국이 돼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한문으로 된 책을 가장 많이 남긴 분은, 근래까지 산청(山淸)에 생존했던 중재(重齋) 김황(金榥 : 1896~1978) 선생이다. 그 문집의 양은 퇴계선생 문집의 5배도 넘을 것이다. 본인이 문집을 대략 다 편집해 뒀다. 그러나 새로 체재를 짜고 교정하는 데 10년 걸렸다. 스승의 문집을 내기 위해서 편찬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지지부진이었다. 자기가 편집을 주도하지 못하자 은근히 방해하는 제자도 있었다. 이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서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택와(擇窩) 허선도(許善道) 교수는 10년 동안 연구와 활동을 다 접고, 스승의 문집 간행하는 일에만 몰두해 마침내 완간을 해냈다. 스승의 학문이 후세에 전하는 데는 제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 先 : 먼저 선. * 師 : 스승 사.

    * 文 : 글월 문. * 集 : 모을 집.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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