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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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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86) 제24화 마법의 돌 86

“인생은 짧아요.”

  • 기사입력 : 2019-05-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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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순영이 느닷없이 절에 가자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날씨도 초겨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사도 할 수 없고 할일도 없으니 불공이나 드리러 다녀야지요.”

    “자동차를 타고 갈 수도 없는데.”

    전쟁이 계속되면서 기름도 배급을 했다. 자동차용 기름은 돈이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끌고 다닐 수가 없다.

    “기차로 가지요.”

    “돈은 있나?”

    이재영은 전쟁이 시작되면서 돈을 아끼고 있었다.

    “돈이 없겠어요? 돈은 내가 쓸 테니 따라만 다녀요.”

    류순영이 눈웃음을 쳤다. 류순영은 주로 금을 사고팔아 축재를 했다. 대구에서는 금이 많다고 하여 금가락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어느 절에 가나?”

    “경주 불국사도 가고… 양산 통도사도 가고… 온천에도 갑시다.”

    “허어. 남들은 전쟁으로 죽어 가는데 우리는 놀러다니자는 거요?”

    “인생은 짧아요.”

    류순영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가 경찰서에 끌려갔다가 온 뒤에 류순영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재영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가방 하나를 챙겨서 류순영을 따라 나섰다.

    장사꾼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장사를 할 수 없었다. 장사를 하면서 일본인들과 부딪치기도 싫었다. 일본인들은 공연히 조선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물자가 부족해져 일본인들의 눈빛이 흉포해지고 있었다. 광기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재영은 류순영과 함께 경주로 향했다.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데 차창으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에요.”

    류순영이 환호했다. 이재영도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잿빛의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쌀 같네요.”

    류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일본이 쌀을 공출하면서 많은 땅을 갖고 있는 이재영네도 잡곡밥을 먹어야 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쌀의 60%가 군량으로 보내졌다. 조선은 쌀 부족이 심각해졌다.

    “정식이 장가도 보내야 하지 않아요?”

    아들 정식이 어느덧 성년이 되어 있었다. 학도병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절에 들어가 있었다.

    “전쟁 중에 어떻게 결혼을 시켜?”

    결혼을 하다가는 학도병으로 끌려가기가 십상이다.

    “정식이는 괜찮을까요?”

    류순영이 아들에 대해서 물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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