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7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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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소고(溯考)- 김영일(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5-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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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촉석루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4대 누각 중 하나다. 6·25전쟁 때 소실돼 복원됐지만, 국보에서 지방문화재로 강등돼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명성은 예나 다름없다. 지역 언론을 대표하는 경남신문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여하는 칼럼의 타이틀을 ‘촉석루’로 정하고 다양한 주제로 독자들을 만나고 있어서 더욱 반갑다.

    촉석루는 고려시대 10대 문장가로 수많은 한시(漢詩)를 남긴 김지대가 진주 목사로 근무할 당시인 고종 28년(1241년)에 세운 누각이다. 그가 상주목사 최자에게 보낸 칠언율시(七言律詩)에 진양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잘 소개돼 있다. ‘진주에서 지어진 최초의 시’로 해석돼 촉석루에 걸려 있는 한 소절을 옮겨보면 ‘洛邑(상주)의 계산 땅이 좋다고 하나, 그래도 晋陽(진주)의 풍월이 신선의 땅이라네.’ 그는 문신이면서도 거란과 싸워 이긴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비무환을 강조했다. 남강 언덕에 토성을 쌓고 누각을 지어 외침에 대비하고 전시에는 지휘본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쉼터로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그의 예상대로 진주성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됐으나 촉석루는 적의 표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하지만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거나 싸움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김시민이 분전한 임진왜란 진주성대첩이 그랬고,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살신성인도 촉석루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6·25 때에는 부산 수호를 위해 피의 공방전을 펼쳤던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촉석루는 전쟁 발발 시마다 화염에 휩싸이는 불운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구국의 중심에 서 있었다.

    풍류와 멋의 상징인 다른 누각과는 달리, 호국 혼이 서려 있는 우리 고유의 촉석루를 더욱 아끼고 보존해야 할 것이다. 10년 전에 방화로 전소된 숭례문은 복원 뒤에도 국보 제1호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촉석루도 반드시 국보로 재등록시켜야 할 것이다. 지자체와 언론, 문화단체,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합심해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재의 명예회복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영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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