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1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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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34) 김해 달빛책방

지친 맘 위로해 줄 신통한 책 처방전 내드립니다

  • 기사입력 : 2019-05-16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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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82년생 김지영’이 세상에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고, 일본·중국·대만 등에서도 화제의 책이 됐다. 이 책이 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지 3년이 됐다. 딸이자 아내, 며느리, 엄마로 버거운 삶을 살던 ‘김지영’씨의 삶은 좀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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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시 불암동 ‘달빛책방’.

    아직 우리나라 여성 상당수가 결혼과 임신, 출산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하던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첫째 자녀를 임신한 직장여성의 65.8%가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회사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집안 사정으로 인해 혹은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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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3월 김해 불암동에 문 연 ‘달빛책방’. 이곳에선 박선아 대표가 경력 단절과 독박 육아로 지친 엄마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책을 골라 처방해준다./김승권 기자/

    ‘경력단절’, ‘독박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환영받는 공간이 있다. 휴식과 배움, 심리치료가 가능한 ‘달빛책방’이다. 김해시 불암동에 위치한 이곳은 ‘세상 모든 엄마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반짝반짝 빛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겼다. 지난해 3월 불암동 장어거리 초입에 문을 연 ‘달빛책방’의 박선아(34) 대표 역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였다. 인제대 등 대학 취업진로팀에서 진로 컨설팅과 브랜딩 컨설팅을 하던 커리어우먼이었지만 결혼 후 일을 그만두게 됐다. 박 대표는 “아무리 좋은 직업을 갖고 있었더라도 엄마가 되면 경력단절을 한 번씩 겪게 되는데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쉼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1층과 2층을 사용하는 책방은 다용도 ‘복합문화공간’이다. 꽃차를 파는 찻집과 카페, 서점, 클래스 강의실 등이 들어차 있다. 강가 옆에 자리한 책방에 들어서면 향긋한 꽃향기가 방문객을 반긴다. 꽃차 소믈리에인 어머니 이복화(59)씨가 꽃잎을 말리느라 한창이고 그 옆엔 바리스타인 남동생 선규(31)씨가 손님들이 주문한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맞은편엔 서가와 모임방, 놀이방이 있다. 천장까지 닿은 서가는 칸을 질러 한 권 한 권의 책이 돋보이도록 세워놨다. 베스트셀러를 주로 매대에 올리는 대형서점과 달리 이곳은 사회 명사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나 엄마들의 꿈을 응원하는 책들로 채워져 있다.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면 이용객들이 마음을 열고 책을 볼 수 있도록 원목과 식물들로 인테리어된 카페가 나온다. 그중 특이한 공간이 눈에 띈다. 여느 카페에서 볼 수 있는 테이블들 한쪽에 아이와 엄마가 함께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신발을 벗고 머물 수 있는 마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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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엔 원목과 식물로 꾸며진 카페가 있다.

    여기에서는 ‘책 처방’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대도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 처방은 대략 1시간 동안 1대 1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주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처방 상담은 마음을 읽어주는 카드와 질문에 대답을 쓸 수 있는 종이로 이뤄져 있다. 그는 “책방을 연 후 300명 정도 상담했는데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대화를 통해 적합한 책을 추천하면 자신을 되돌아보고 몰랐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테이블마다 티슈 곽이 놓여 있는데, 상담을 하다가 펑펑 눈물을 쏟는 게 다반사여서 그렇단다.

    박 대표는 책 처방을 위해 매달 1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감명받은 저자들의 또 다른 책을 계속 찾아 읽으며 스펙트럼을 넓힌다. 같은 고민을 먼저 한 저자의 경험을 이곳을 찾은 ‘엄마’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다. 삶의 이야기가 책이 돼야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인생 시나리오’ 쓰는 법을 알려준다. 진로상담을 통해 개인의 강점을 찾아 브랜딩하는 일도 같은 맥락이다. 책방을 차린 이유가 책 처방과 브랜딩을 하려면 ‘책’이 필수 매개이기 때문이다. 동생 선규씨는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게 있다”며 “자신이 브랜드가 되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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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을 담은 병과 책을 인테리어처럼 꾸며놓은 모습.

    실제로 달빛책방을 찾았다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이들도 있다. 책 처방과 상담을 통해 ‘엄마성장연구소’, ‘자연놀이터’, ‘즐거운 퇴사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경력단절된 일반 주부였지만 지금은 수익을 낼 만큼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엄마성장연구소’를 운영하는 김수경씨는 임용고시에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 책 처방을 통해 엄마로 성장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을 하게 됐다. 가르치고 싶은 욕구와 엄마로서 육아경력을 인정해주는 일을 동시에 하게 된 셈이다. 7년 동안 아토피를 앓는 아이를 키우면서 쌓인 치료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한 연구소는 수강생을 받을 만큼 성과를 내고 있다.

    ‘엄마’들만 있는 게 아니다. 양산에서 온 김재환씨는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책 처방 상담을 받게 됐는데,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가질 수 있다고 해서 그림 그리는 삶을 살게 됐다”고 했다. 엔터스튜디오를 차린 그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수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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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달빛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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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책방에서는 책방이 발굴해낸 강사들과 ‘달빛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캘리그래피와 영상기획, 드로잉 모임 등 알찬 모임과 강좌로 빼곡하다. 덕분에 책방은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며 사람 냄새 나는 정겨운 공간이 됐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는 그림책 모임과 엄마독서모임, 태교독서수업과 이너뷰티, 아토피연구회 등 건강 관련 수업도 인기다. 매주 1회 시를 읽고 느끼고 쓸 수 있는 ‘목요시(詩)식회’와 유튜브 이용법을 알려주는 ‘필름메이커’ 수업도 참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필라테스, 요리, 미술 수업의 장소로도 활용된다. 이 수업들의 공통점은 ‘책’이다. 예를 들면 해독프로그램은 알레한드로 융거가 쓴 ‘클린(씻어내고 새롭게 태어나는 내 몸 혁명)’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과 강사의 지식을 합쳐 정보를 전달하는 식이다. 수업은 1시간 30분 정도로 10명 내외의 수강생들이 함께 배운다.

    수업이 끝나면 1층에 모여 저마다 준비한 반찬통을 꺼낸다. 가족들이 함께 운영하다 보니 책방에서 점심을 먹을 일이 많았는데 이때 한두 명씩 숟가락을 얹다 보니 이제 수업이 끝나면 다 함께 식사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창원에서 온 이은희씨는 “집에서 먹으면 한두 가지 반찬으로 먹었을 텐데 여기 오면 구첩반상 부럽지 않게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23개월 된 딸 조이를 둔 박 대표는 “집에서 육아하다 보면 대충 끼니를 때우기 마련인데 여기서 함께 먹으면 밥도 맛있고 신나게 대화를 할 수 있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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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수익금의 일부를 ‘베이비박스’와 ‘핫핑크돌핀스’ 등에 기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얼마 전엔 돌고래를 새긴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책으로 원하는 삶을 찾고, 이들이 모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책방의 신념이 닿아 있는 대목이다. 박 대표는 ‘제돌이’와 엄마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제주도에서 불법 포획돼 돌고래 쇼를 하던 제돌이도 처음 제주바다로 야생방류될 때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도 많았지만 적응을 잘하더라”며 “꿈을 품은 ‘경단녀’들도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 걱정이 있겠지만 이곳에서 자신을 재조명하는 책을 읽고 배워 삶의 주인공으로 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을 연 지 1년여밖에 안 됐지만 책 처방과 브랜딩 수업이 인기를 끌면서 김해와 창원, 양산, 부산 등 인근 도시뿐만 아니라 서울과 대전, 대구 등에서도 찾아오는 장소가 됐다. 엄마들의 삶이 한층 여유로워지면서 아이와 아빠들도 수업에 참여하는 일이 늘어났다. 최근엔 ‘파파데이’, ‘친정엄마와 데이트’ 등을 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수수한 차림과 민낯으로 책방 손님을 맞는다. 그는 “엄마들이 문의 전화를 하면서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는 날 가겠다거나 예쁘게 꾸미고 찾겠다는 말을 하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이야기 나누고 책으로 힐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첫날은 반찬이 없어도 점심식사에 초대받을 수 있다”며 웃어 보였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면 앞을 밝혀주는 달빛의 존재는 큰 위로가 된다. 문득 삶이 정체돼 있거나 꿈을 좇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땐 당신의 빛나는 이야기를 찾아주는 이 책방에 발걸음 해보자. 오늘도 이곳은 마음에 와닿는 책 한 구절과 향긋한 꽃차가 마음을 다독여 줄 채비를 하고 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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