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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세계문화유산 서원의 보존과 운용- 장성진(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6-03 20: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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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중순 한국의 서원 아홉 곳이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사전 심의하는 국제 자문기구가 ‘한국의 서원’을 심의하여 등재 권고를 하였다는 것이다. 등재 권고를 받은 대상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한다는 관례도 함께 소개되었다.

    이제 곧 한국은 기록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을 포함하여 총 14건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는 나라가 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사실은 그 가치에 대한 엄청난 인정이자 예우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점검과 노력을 곁들여야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에 향촌 사림 출신 지방관이 고을의 대표적 선현을 추모하고 지역의 민풍과 학풍을 진작시키기 위한 구심점으로 창설하였다. 이번에 선정된 아홉 서원 중 하나인 소수서원이 그 예이다.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관학인 향교를 정비한 뒤, 고려말 대유학자인 안향을 향사하는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의식을 행할 때는 손수 노래를 지어 청소년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예악을 갖추고, 강당을 짓고 서적을 마련하여 교육에 힘썼다. 후임 군수인 이황은 이를 발전시켜 국가가 공인하는 사액서원으로 격을 높였다. 교육, 수양, 학문 연구를 통한 엘리트 양성과 이들이 주도하는 왕도정치의 꿈이 이 새로운 공간에서 자라난 것이다.

    도산서원의 건립과 운영은 한 학자의 이상이 차근차근 이루어지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이황이 고향 인근 언덕에 터를 마련하고, 조촐한 서당을 세우고, 학생들의 독서 생활 공간인 숙사를 건립하고, 주변에 우물과 연못과 화단을 조성하고, 산책로에는 인문과 우주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였다. 젊은 학자들에게는 경서의 심오한 내용에 대하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청소년들에게는 한글시를 지어 노래로 부르게 하였다. 이런 과정을 그는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이 기록을 읽노라면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추앙되는 거유 퇴계에 앞서 온유한 선생님 이황의 성음과 온기가 느껴진다. 이 온기 속에서 조선을 경영한 정치가도 격렬한 학문적 토론을 지속한 대학자도 대거 양성되었다.

    그러나 하나의 제도는 그 속에 이상과 야망의 양면을 담는다. 이후 서원은 향학열과 절의를 전승하는 수련의 전당으로 확대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향사의 기능이 강화되고 정치적 결속을 다지는 이른바 문중서원으로 방만하게 설립되기도 했다. 국가에서 서원 남설을 금지하는 정책을 자주 발표하고, 급기야 흥선대원군이 섭정을 하는 시기에 강제로 훼철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이 정책을 난폭한 학문 탄압으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정 능력을 상실한 지배층을 정화하는 측면이 더 설득력을 가진다. 전국에 47개의 서원과 사우를 남기고 그 10배 넘는 600여 곳을 철폐한 과정에서 선정 기준이나 처리 과정을 수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사 기능을 중단하고 강학 기능을 유지하는 서당으로 개편한 사람들은 지혜로운 선택을 한 셈이다. 사액으로 국가가 지원 장려하기도 하고, 제약과 철폐로 단속한 것이 학문의 자유에 대한 간섭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변화와 지속의 균형을 잃지 않았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서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정립할 때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원은 건물의 가치를 우선으로 삼고 유지와 관리에 힘쓴다. 나아가 서원 스테이 체험, 청소년 예절 교실, 향사된 인물의 현창 사업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서원이 가졌던 학문 연구기관으로서의 본질적 의의를 다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지역 교학의 중심으로서의 기능, 비판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욕구, 실천적 인문학의 과제 개발 등 미래지향적 학문 패러다임 확립의 계기로 삼는 태도가 절실하다.

    장성진(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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