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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엄마가 기뻐하신다면~- 이필수(미래에셋대우 김해WM 지점장)

  • 기사입력 : 2019-06-11 20: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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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필수 미래에셋대우 김해WM 지점장

    초등학교 6학년 겨울에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장례만 치르고 오시고 엄마는 삼사일 뒤 집으로 돌아오셨다. 하얀 상복을 입은 어머니는 마당으로 들어오시자마자 같이 살던 할머니를 부둥켜 안고 두 분이 다 같이 대성통곡하며 우셨다.

    내 기억에 두 분의 사이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마른 나뭇가지같이 바짝 마른 엄마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깊은 안쓰러움, 그리고 몇 년에 한 번씩 보았음 직했을 친정엄마를 여읜 슬픔을 두 분은 그리 나누셨던 것 같다. 그렇게 몇십 분을 서럽게 우시던 엄마는 옷을 바로 갈아입으시고는 가마솥에 물을 끓여 동생들과 나의 얼굴과 목과 손을 차례대로 씻어 주셨다.

    그때는 왜 그리 겨울이 되면 손이 금방 텄는지, 엄마는 “조금만 있으면 중학생이 될 건데 손이 이게 뭐냐” “목에 때는 왜 이리 안 씻느냐”라고 하시며 몸 구석구석을 씻으며 타박을 하셨다.

    그때 엄마는 서른다섯이었다. 내가 철이 들면서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엄마가 기뻐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습관이 생겼다. 엄마라면 내가 이런 결정을 했을 때 기뻐하실까, 잘했다고 칭찬하실까 하며 생각하니 기준이 명확해지고 또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때가 많아졌다.

    덕분에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라고 친구들에게 놀림받을 때도 있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삶의 잣대가 되기도 하고 때론 모녀 사이의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직도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오거나 텔레비전에서 각종 사건 사고를 보시면 새벽이고 밤이고 전화해서 안부를 물으시고 당신 얘기만 하고 끊으시는 버릇은 여전해 우리 자매들이 치(?)를 떨곤 한다.

    그러면서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우리는 이제 엄마처럼 살기가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열흘 뒤면 엄마의 일흔세 번째 생신이다.

    케이크에 그득한 양초의 불을 입으로 불어 끄실 엄마를 위해 어린 조카들과 큰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릴 것이다. 엄마가 기뻐하시도록….

    이필수(미래에셋대우 김해WM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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