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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을 이겨낸 예술가들- 김미숙(마산문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19-06-17 20:3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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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사는 게 정말 싫을 정도로 힘든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외로운 여정이다. 스스로 위로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그럴 때면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내 마음 속 soul mate로 각인된 멕시코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다. 사는 일이 힘들 때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삐걱댈 때마다 프리다 칼로를 생각한다. 그녀는 역경 속에 피어난 꽃이다. 6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 생겼고. 18세 때는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척추가 으스러지고 골반은 조각났다. 버스 손잡이 철제 봉이 자궁을 관통하면서 평생 30회가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세 번의 임신과 유산.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그림 그리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졌을 뿐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행복하다.” 이 말이 그녀의 투지를 보여준다.

    역경을 이겨낸 예술가는 많다. 청각장애이면서도 불멸의 곡들을 작곡한 베토벤. 손가락 감염으로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되었지만 작곡은 할 수 있다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로베르트 슈만. 폐결핵, 류머티즘, 후두염, 신경장애와 지독한 성병에 몸의 관절이 물러지는 희귀한 병까지 몸에 담고 끊임없이 병원을 돌며 병마와 싸우다가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악마의 연주자라고 불렸던 파가니니의 연주 기법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는데 관절이 물러져 손가락이 기형적으로 휘어질 수 있어서라는 것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함께 미국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화가 앤디 워홀은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피츠버그 빈민가에서 자랐다. 끼니를 걱정할 만큼 궁핍한 어린 시절을 지나며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위태로운 환경과 대항했다. 그가 그린 캠벨 수프 깡통연작이 유명해졌지만 사실은 그 싸구려 토마토 수프에 빵을 적셔 먹으며 자란 환경이 내면으로부터 발산된 것이다. 그런 만큼 몸은 허약하고 항상 병치레를 했다. 작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화했다는 비난과 미술의 새로운 장르와 환경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으면서 미국 최고 상류그룹에 합류했다. 그런데 자신의 작업실을 굳이 공장(factory)이라고 명명한 것은 상류사회의 가식을 조롱한 것으로 사람들은 평가한다.

    고난과 역경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역경은 그를 더 단단하고 잠재력 갖춘 사람으로 키워낼 것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요즘 청춘들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하고 또한 공감한다. ‘취포자’라는 말이 취업포기자라는 뜻이란 걸 들으며 내 가슴까지 답답해졌다. 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조건이 나은 해외로 이주하고, 자동화 등 다양한 이유로 국내 기존 일자리마저 줄어드는 것을 나도 보고 있다. 그러나 경제는 생물이라 하향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시장이 살아남기 위해 다시 상향을 향해 몸부림친다. 문제는 이 시기에 비록 당장 취업이 어렵다고 자신의 잠재력을 키울 의지마저 내던져버린다면 막상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법이다. 판단력 빠른 기업들은 침체기가 왔을 때 공격적 투자를 한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먼저 잡는다. 취업이나 창업도 마찬가지다. 역경을 딛고 위대해진 예술가들처럼, 역경이 왔을 때 자신의 잠재력을 키우는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우정 어린 첨언이 이 땅의 청춘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미숙(마산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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