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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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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10) 제24화 마법의 돌 110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 기사입력 : 2019-06-21 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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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탁통치반대운동은 3월이 되자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이승만과 김구를 비롯한 민족진영은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미군정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백화점은 서서히 영업이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물가는 오르고 있었으나 정국도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1946년 3월이 가고 4월이 되었다. 집집마다 담장 안에 복사꽃이며 벚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사장님, 우리 봄 소풍 가요.”

    벚꽃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할 때 허정숙이 제안했다. 허정숙이 이렇게 살갑게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며칠 전부터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하더니 기어이 말을 꺼낸 것이다.

    “소풍?”

    “꽃이 금방 질 거예요. 제가 도시락을 쌀게요.”

    “그러지.”

    일요일이었다. 따뜻한 바람에 꽃향기가 풍기고 있었다. 매일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백화점에 출근했으나 일요일 하루는 쉬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허정숙은 이미 준비를 해놓은 것 같았다.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돗자리와 도시락을 가방에 쌌다. 이재영은 차를 운전하여 허정숙과 함께 광나루로 갔다. 아차산에 벚꽃이 하얗게 피어 있고 수량이 풍부한 한강이 우쭐렁대며 흐르고 있었다.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허정숙은 약간 들떠 있었다. 나들이를 나온 탓인지 집에 있을 때보다 미소를 자주 짓고 말도 많이 했다.

    차에서 돗자리를 꺼내 강가에 폈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고 풀이 파랗게 돋아나 있었다. 강까지 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 했다. 나룻배들이 드나드는 나루터와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장님, 날씨가 너무 좋아요.”

    허정숙이 도시락을 펴면서 눈웃음을 뿌렸다. 그녀는 술도 준비해 가지고 왔다.

    “일이 급해서 꽃구경을 못할 뻔했는데 정숙이 때문에 구경을 하네. 고마워.”

    이재영은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사장님은 쉬시면서 일을 해야 돼요.”

    허정숙이 예쁘게 웃었다.

    “정숙이도 마실래?”

    허정숙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미군부대에서 나온 맥주였다.

    “저 술 마실 줄 몰라요.”

    “한 잔 정도는 괜찮아. 미군은 맥주를 음료수라고 그런대.”

    “취하면 어떻게 해요?”

    “취하면 쉬지. 날씨도 좋잖아?”

    “알았어요.”

    허정숙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왜 그래?”

    “술이 써요.”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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