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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계정을 삭제해야 하나- 김태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 기사입력 : 2019-06-23 20: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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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최근 나온 책 이름이다. 신간 소개에서는 유독 저자가 강조되었다. 저자인 재런 러니어(Jaron Lanier)는 디지털 문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의 주장을 인터넷 문화에 대한 상투적 반감처럼 넘기지 말라는 뜻이겠다. 일단 SNS에 게으른 필자를 변명해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처음 이메일로 외국인과 대화할 때 참으로 신기했다. 다분히 개인적 느낌의 블로그 글을 접했을 때도 신선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를 마련하고, 카페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비용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블로그든 카페든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공력이 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트위터가 유행하기 시작되었을 때 뒤질세라 나도 가입했다. 그러나 ‘친구’가 늘어나면서 고민이 생겼다. 처음엔 30명 넘을 때, 다시 100명, 200명을 넘기면서 그때마다 고민했다. 어떻게 모든 친구에게 잘할 수 있겠는가.

    영화 〈서치〉(2018년 개봉)는 SNS 공간의 이른바 ‘친구’의 가식적 실상을 꼬집었다.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아빠는 페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딸의 ‘친구’들을 알아냈고, 그들을 탐문했다. 그 과정에서 딸의 ‘친구’들이 SNS 공간에서 표현된 만큼의 친구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신분을 위장한 가짜 친구까지 있었다.

    더욱이 말이 ‘친구’이지 ‘친구의 친구’로 확장되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연결된다. 사적인 공간이라 여겼다가 낭패를 보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기 어렵다. 수다처럼 가볍게 내뱉은 말이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어느덧 내 페북은 더 이상 친구들을 늘리지 않고, 가끔 친구들의 동향을 들여다보는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 사이에 카톡방의 쓰임새가 증가했다. 멤버가 한정된 그룹의 연락에 실용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카톡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이 있어 연락자가 불평하는 경우도 있긴 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한 개인이 집에 앉아서도 천하를 알게 해주고, 시골에 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해준다. 언론기관이나 전문가의 독점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에게 발언권을 주고 일반 다중의 지혜를 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직접 민주주의의 기술적 가능성도 한층 높여 주었다.

    그러나 재런 러니어에 의하면, 소셜미디어에는 더 많은 클릭 수를 유도하기 위해 스스로 끊임없이 보정하는 알고리즘이 작동한다. 이런 알고리즘 속에서 이용자는 점차 자유의지를 잃고 중독에 빠진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에 몰두하며 점차 ‘꼴통’이 되어 간다. 맞춤 제공 콘텐츠에 빠져 개인화되며 공감능력을 잃어 간다. 가짜가 증가하고, 부정적 감정이 부추겨지며, 정치는 무력화된다. 이런 상황이 돈벌이와 결합된다.

    좋은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우리는 어느새 기술에 의한 새로운 독점의 위험에 직면했다. 클릭 수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저질 댓글과 막말의 구렁텅이에 빠져 서로 핏대를 올리고 있다. 책임도 지지 않는 가짜 뉴스에 휘둘리고 그 전파에 일조하고 있다. 집에서도 쉬지 못하고 온 세상 사람들과 피곤함을 주고받고 있다.

    기술의 이용에는 이용자 개인의 지혜가 요구된다. 개인들의 선호에 따라 SNS의 구현 양태는 바뀔 수 있다. 먼저 좋아요 수와 클릭 수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사회적 관계의 다양한 옵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것도 너무 집착하면 병이 되고 독점상황이 되면 노예가 된다. 필자는 아직 SNS 계정을 삭제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해독을 경계할 뿐이다.

    김태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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