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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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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바닥으로 역사를 가리려 한다- 이창하(시인)

  • 기사입력 : 2019-07-01 2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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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포정치로 잘 알려진 태종은 계속 사관이 따라다니면서 자신에 관한 역사를 기록하자, 늘 사관으로부터 도망을 다녔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태조 2년 조준은 고려왕조 사초를 보고 경악을 하게 된다. 공양왕때 사관 이행이 우왕과 창왕을 죽인 자는 이성계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이 사실을 태조에게 말하자 태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한 일을 역사에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인정을 한 셈이다.

    역사 보관 또한 철저하여 조선왕조실록은 화재를 대비해 4곳에 분산 보관하고 있었으니, 실록청에 이어 강화도와 안동 그리고 전주 등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전주를 공격하자 참봉 오희길과 손홍록은 전주에서 보관 중이던 실록을 목숨을 걸고 정읍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와 깊이 숨겨서 온전히 보관했다고 한다. 역사란 이처럼 엄중하고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비록 절대 권력자라 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요, 위정자들은 역사는 널리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결과이다. 덕분에 조선왕조에 대해서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초등 6학년 사회교과서를 집필자 몰래 조작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여론에서는 역사 은폐, 왜곡, 도둑질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마침 이 책을 집필한 진주교육대학교 박용조 교수가 발견을 하고 교육부를 상대로 항의를 한 것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하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처음 교육부는 박 교수에게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박 교수는 ‘이렇게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록이 바뀔 수 있으므로 불가하다’고 분명히 의사를 표현하자, 이들은 위조 협의서를 작성하고 박 교수의 도장을 조작하여 결국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한 채로 일선 학교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명백한 공무서 위조일 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한 중죄를 지은 셈이 된다. 당연히 의법처리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사건과 관련되어 담당과장과 연구원 그리고 애매한 출판사의 출판 담당자만의 문책으로 끝났다고 한다. 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이러한 인사들이 현 행정부에 진을 치고 있는 이상 나라의 장래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정말 위험한 일이요, 무단 정치를 했던 일제 강점기 때나 후진국에서 볼 수 있는 부끄러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자 교육부 고위 공직자는 물론 담당자들까지 포함하여 17명이 문책을 당하고 법적 책임을 물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자칭 깨끗한 정부라고 자부하는 현 정권과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손바닥으로 역사를 가리는 짓이라고 할 것이다.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고, 현실을 보려면 시장으로 가야 할 것이고, 미래를 예측하려면 학교로 가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를 가도 정상으로 보이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이창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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