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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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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의 인류애와 한국사랑- 하강돈((사)비화가야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9-07-01 20: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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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는 온 국민이 분연히 일으나 3·1만세독립운동을 일으킨 지 꼭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새해 들어 지상파 방송에서는 전 국민 독립선언서 낭독 프로젝트 기획보도가 연일 방송되고, 잊힌 호국영웅들과 그 가족들의 미발굴된 사료를 찾아 함께 특집으로 방영함으로써 나라의 주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우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망우리공원묘역에서 서울국제친선협회가 주관하는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 선생 추도식’에 다녀왔다. 묘역 입구에서 왼쪽으로 도보길로10여분 걸어오르니 동쪽 언덕 위 양지바른 곳에 아사카와 선생의 묘가 자리잡고 상석 앞에 묘표석이 서 있었다. 묘표석은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고 적고 있다.

    서울시에서 세운 안내문은 그의 공적과 인간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일본 야마나시현 출생. 한국에 먼저 건너온 그의 형 노리다카(1884~1964)를 따라 1914년에 건너와 총독부 산림과 임업시험장에 근무하며 한국의 산림녹화에 힘썼고,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민예를 수집하고 연구해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를 출간했다. 아사카와 형제는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예술관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들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다. 식목일 기념행사 준비 중 급성폐렴으로 타계했는데 당시 이 땅에서 그들만의 사회 속에서 살다 돌아간 대다수의 일본인들과는 달리, 그는 기독교정신에 근거한 코스모폴리턴으로 한국말을 하고 한복을 입고 한국인의 이웃으로 살며 진정으로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간 사람이었기에 죽어서도 이 땅의 흙이 됐다.(이하 중략).”

    필자는 우리나라 지역사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향토사학가로서 한일 간의 민족감정을 하루빨리 치유하고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모름지기 멀고도 가까운 이웃, 두 나라 민족은 21세기 미래 100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아사카와 다쿠미 선생과 같이 의인으로 살다 가신 위인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상호 적대적 민족감정을 순화해 나가면서 가까운 미래에 ‘형제의 나라’라고 선포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하강돈 ((사)비화가야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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