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0일 (금)
전체메뉴

누구를 위한 빨갱이 공포인가?- 백승진(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9-07-08 20:47:15
  •   

  •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1947년에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봉쇄정책의 시작이었으며 냉전을 촉발시킨 주요 원인이라 평가받는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한다. 소련을 경쟁 상대가 아닌 적으로 지목하면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이데올로기를 양분해 강력한 반공주의를 선택한 트루먼은 ‘빨갱이 공포’로 미국 국민들을 히스테리 상태로 몰고 갔다. 극단적이면서 초보수주의적인 반공주의 선풍을 일컫는 미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 이름에서 유래한 ‘매카시즘’이란 용어가 탄생한 시기다.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는 1950년대부터 직간접적으로 매카시즘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역사가들의 주장을 요약해 보면 1950년대 전반에 미국 내의 공산주의가 사회 체제를 전복할 것이라는 공포감은 미국인들에게 거의 히스테리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인들이 왜 이런 공포감을 느껴야 했는지에 대해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공산주의가 ‘가상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실제적인 공산주의 세력의 위협으로 존 웨인이 출연한 〈빅 짐 맥레인〉이나 엘리아 카잔이 감독한 〈위험에 처한 남자〉와 로널드 레이건이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출연한 〈전쟁 포로〉와 같은 많은 반공영화가 1950년대 초반에 제작되기도 했다.

    공산주의가 가상의 적은 아니지만 문제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가 극단적인 반공주의를 강조하고 용공적인 언론, 사상, 정치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억압을 가하고 있었으며, 특히 트루먼 행정부는 냉전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부당 행위가 저질러졌지만 공산주의가 미국의 체제를 전복한다는 과대 포장된 위협으로 늘 정당화되었다.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국민 대다수는 매카시의 허풍을 묵인했고 가차 없는 전복 세력 색출에 찬사를 보냈다. 수많은 인권 침해가 있었으나 찬사를 보내지 않으면 자신이 공산주의자로 몰리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애국자가 되길 원했다.

    〈하이눈〉은 이처럼 애국자가 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해야만 하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풍자한 영화로 작가 겸 프로듀서인 칼 포만은 영화제작 도중에 ‘의회반미활동위원회’에 소환되어 과거 미국 공산당에서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미국영화협회’는 포만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포만은 위원회에 다녀온 후 영화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의회반미활동위원회는 할리우드가 공산주의의 온상이라 확신하고 많은 감독과 작가, 배우들을 청문회에 세웠는데, 어윈 윈클리 감독의 〈비공개〉가 이러한 할리우드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찰리 채플린 감독의 〈뉴욕의 왕〉에서는 “마르크스를 읽으면 공산주의자인가요?”라고 묻는 십대 소년 루퍼트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히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샤도프 국왕을 볼 수 있다.

    〈마제스틱〉에서도 평범한 영화 대본 작가인 피터는 FBI 국장 에드거 후버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린다. 〈굿 셰퍼드〉에서는 1950, 60년대의 ‘빨갱이 공포’는 군수산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같은 역사적 상황을 겼었고 많은 희생자를 확인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산주의’, ‘빨갱이’, ‘좌파’, ‘종북화’란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굳이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백승진(경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