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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784) 불재기위(不在其位) -그 자리에 있지 않다

  • 기사입력 : 2019-07-08 21: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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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28~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가 별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프랑스 대통령, 세계은행 총재 등을 만나는 등 자기가 마치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인 것처럼 행세하고 다닌 일이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설치고 다니는 딸도 문제지만, 그렇게 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아버지 트럼프가 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이방카를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임명하려다 무산되었고, 세계은행 총재후보로 추천하려다 전 세계의 비웃음을 샀다.

    미국 대통령 딸이 만나자고 했을 때 전 세계 각국 정상이나 단체의 대표 가운데서 안 만나겠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미국 대통령은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존재이고, 이방카는 미국 대통령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직위가 아니고, 최고실력자와의 거리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장관 서열 1번인 국무장관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또 혼자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방카는 수시로 아버지 트럼프와 만날 수 있고, 거의 대부분 단 둘이 만난다. 그러니 그 영향력은 국무장관과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정승 열 명이 왕비 한 명만 못 하다’라는 서울지방의 속담이 있다. 정승은 왕을 만나기가 어렵고, 또 독대를 하기는 더욱 어렵고, 또 자주 갈리기 때문에 평생 임금 곁에 있는 왕비와 영향력에서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런 속담이 생긴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대통령의 딸이라고 정치에 관여하면 안 된다. 백악관 보좌관이라는 직책이 있지만, 대통령인 것처럼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공사(公私)의 구분이 전혀 안 된 태도다. 대통령 딸만 안 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아들도 안 되고 대통령의 부인도 안 된다. 대통령이 형제도 물론 안 된다.

    선거나 임명 등을 통해서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이 아니면 공무(公務)에 손을 대서는 안 되고, 공적인 회의에 참여해서도 안 된다. 도지사나 시장 군수 등의 자녀나 부인들은 당연히 공무에 손을 안 대고 공적인 회의에 참석 안 한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관대하다. 전세계 각국에서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일이 아니고, 명백한 위법이다. 시대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왕조에서 왕족에게 관직을 맡기지 않은 것은 권력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논어(論語) ‘태백편(泰伯篇)’에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不在其位, 不謀其政)’라는 말이 있다. 공식적으로 그 자리에 있도록 인정받지 않은 사람은 그 정치에 참여해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 不 : 아니 불(부).

    * 在 : 있을 재.

    * 其 : 그 기.

    * 位 : 자리 위.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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