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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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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그림자 왕 - 내 안의 가부장- 이경옥(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

  • 기사입력 : 2019-07-17 20: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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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배우 강지환의 외주 소속사 직원에 대한 성폭행 사건과 베트남 다문화여성을 폭행한 한국인 남편의 가정폭력 사건이 이슈가 되었다.

    강지환 성폭행 사건의 경우 포털 사이트들이 처음에는 사건을 그대로 보도하였다. 하지만 댓글들은 사건을 잘 모르면서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글로 넘쳐났다. 한 인터넷 언론사에서는 기사 제목을 ‘강지환 구속 위기’라고 쓰면서 가해 사실을 의심하는 기사도 나왔다. 많은 댓글들은 “왜 남자 집에 가느냐”, “112로 전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지인을 통해 경찰에 알려달라고 했다”는 등 피해자의 처신에 대해 석연치 않다고 하면서 마치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글들이 넘쳐났다. 가해자가 구속되고, 성폭행을 인정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강지환 측에서 “어차피 강지환은 잃을 게 없다. 앞으로 너희에게 닥칠 일들에 무서워해야 한다”는 등 피해자를 협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피해자에 대한 조롱과 비난에 대해 명예훼손을 고소하겠다고 한 후에 좀 잠잠해졌다.

    또 베트남 여성 가정폭력사건도 비슷하다.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이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무차별적 폭행을 당했다. 처음에는 가해자 남성을 비난하는 글이 많았고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그러다가 며칠 후 ‘불륜을 했다’는 주장이 이어지면서 피해자가 ‘폭행을 유도했다’는 설까지 난무했다. 하지만 불륜의 또 다른 당사자인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의 존재는 지워지고 폭력의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에게는 온갖 모욕적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가해자 남편은 ‘맞을 짓을 했다고 하면서 다른 남자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항변하였다. 세상에는 ‘맞을 짓을 한 일은 결코 없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시키면서 결혼이주여성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런 포털 사이트의 글들은 종전에도 심심찮게 보아 왔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경우 많은 여성 피해자들은 깨끗하고 무결한 피해자여야 비난받지 않았다. 피해 사실이나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왜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의 잘못을 비난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강도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에게 왜 강도를 피하지 않았느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또 이율배반적으로 남성이 피해자일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남성이 피해자인 성폭행 사건에는 가해자를 비난하는 댓글로 넘치고 피해자를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보고 여론몰이를 하는지가 질문되어야 할 지점이다.

    심리학자 ‘시드라 레비 스톤’이 쓴 ‘그림자 왕 (The Shadow King)’에서 내면화된 ‘내면 가부장’이 우리의 삶에서 빛과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가부장제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정당화시키고 보편화시켰다. ‘여성은 인간(남성)과 동물의 중간에 있다’고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위치로 규정했다. 또한 여성은 감정적이므로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고 가해자를 비난하기보다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는 이러한 고대의 가부장제가 그대로 현대에도 이어져 사회규범을 형성하고 내면의 지배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부장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 내면의 그림자처럼 심연 한 곳에 깊숙이 묻혀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타자화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라는 그림자 왕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무의식처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우리의 가부장성은 성찰하지 않으면 공기처럼 소리 없이 드러나 여성을 향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이경옥(경남여성단체연합 여성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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