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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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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소피커- 조고운(사회부 기자)

  • 기사입력 : 2019-07-21 20: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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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고 교실에서는 불시에 브래지어 검사가 이뤄졌다. 선생님은 일일이 아이들의 등 한가운데를 쓸어내렸다. 늦잠에 바빠서 혹은 거추장스러워서 깜빡한 날엔 정숙지 못한 여자아이 취급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입이 튀어나왔지만, 또 그렇게 길들여지면서 노브라로는 외출하지 못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배우 설리가 ‘노브라는 소신’이라고 발언했을 때 그때의 교실이 떠올랐다. “브래지어 착용은 개인의 문제이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착용하지 않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럽고 예쁘다고 생각한다. 시선 강간이 더 싫다.” 그녀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포털에서 설리를 검색하면 ‘소신 발언’이라는 키워드가 뒤따른다. 초창기 악플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제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말에 열광하고 있다. 설리처럼 기존 관습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이들을 ‘소피커’라고 부른다. 소(所)+소(小)+스피커(speaker)를 합친 신조어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2019년 1534세대의 라이프 조사’를 통해 Z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소피커를 꼽았다. Z세대 10명 중 8명은 최근 6개월 내 추구하는 소신을 위해 행동한 적이 있다고 답했고, 소신의 범위는 환경, 취향, 사회문제 등 광범위했다.

    ▼소신(所信)이란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를 뜻한다. 소신 있는 삶은 현실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우리 사회도 소신 있는 이들에 의해 변화돼 왔다. 지금 사회를 바꾸고 있는 ‘미투 운동’이나 ‘직장인 괴롭힘 금지법’ 역시 누군가의 소신 발언으로 시작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평범한 기성세대에겐 대의를 위해 소신을 굽히거나, 조직과 사회의 평화 또는 안정을 위해 소신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기도 했다.

    ▼Z세대의 소신은 다르다. 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선 타인의 불편한 시선과 실질적 고단함을 기꺼이 감내한다. ‘좋은 게 좋다’는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고, ‘싸가지 없다’는 비난에도 쫄지 않는다. 이들이 주류가 된 사회를 상상해본다. 고교생이 된 내 딸이 브래지어 검사와 같은 비정상적인 학교 규율에 소신껏 반박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통쾌함에 온몸이 짜릿하다.

    조고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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