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18일 (화)
전체메뉴

[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787) 몽견주공(夢見周公) - 꿈에 주공을 보다. 매우 숭배하는 사람은 꿈속에서 만날 수 있다.

  • 기사입력 : 2019-07-30 07:55:12
  •   

  • 사람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의 학문과 덕행을 이룬 성인(聖人) 공자(孔子)였지만, 자기의 경륜을 실현할 수 있는 통치의 기회는 얻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고전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가르쳐 후대에 전하게 했다.

    공자가 가장 이상적인 인물로 여긴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있었다. 주나라의 예법제도와 음악제도를 완성하였는데, 공자가 극찬을 하면서 따랐다.

    연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공자가 주공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워낙 주공을 숭배한 나머지 꿈속에서 가끔 만났다.

    공자가 연로하여 이상을 실현할 희망이 거의 사라지자,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논어(論語)’에, “심하도다!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구나! 내가 다시 꿈에서 주공을 만나뵙지 못한 지가.(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며 탄식한 말이 나온다.

    의령(宜寧) 덕곡서원(德谷書院)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 퇴계(退溪) 이황(李滉 : 1501~1570)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의령의 김해허씨(金海許氏) 집안이 퇴계선생의 처가였으므로, 7번 이상 의령을 방문하였고, 어떤 때는 오래 머물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1654년 의령현감 윤순거(尹舜擧)가 지역 유림들과 뜻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의령 유일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퇴계의 학덕을 본받아 젊은 인재를 기르자는 건립 취지에서였다.

    모든 향사(享祀) 의식을 도산서원(陶山書院)과 같이하기 때문에 ‘남쪽의 도산서원’이라는 별칭이 있다. 1868년 훼철되었다가, 의령 유림들의 힘으로1984년 옛날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서원이 그렇듯이 일반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몇몇 연로한 유림들의 힘만으로는 매년 향사 치르고 큰 건물을 유지 보수하기가 힘들었다.

    오늘날 덕곡서원을 문화재로 지정되게 하고,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군청의 지원을 받아 매년 음력 2월 20일에 향사를 올릴 수 있게 된 데는 의령의 여러 유림들의 공이 크지만, 특히 원로 두 분의 공로가 더욱 크다.

    낙서면(洛西面) 오운리(五雲里)에 세거하는 벽진이씨(碧珍李氏) 집안의 운포(雲浦) 이선두(李善斗) 사문(斯文)과 정곡면(正谷面) 오방리(五方里)에 거주하는 해산(海山) 이종경(李鍾慶) 사문의 노력으로 서원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상 때부터 대를 이어서 서원의 수호와 내빈 접대를 맡아 하고 있다. 특히 해산 옹은 지금도 계속 후진들에게 한학을 가르치고 있다.

    10여년 전에 운포 옹이 수술로 병실에 누워 향사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꿈에 퇴계선생이 나타나 “은행 샀는가?”라고 물었다. 얼른 서원 일을 맡겨 두고 온 사람에게 전화해 보니, 제사 장을 보았는데 은행을 빠뜨리고 안 샀다고 해서 사게 한 적이 있었다. “지극한 정성에는 신명도 감동한다”는 말을 증명하는 말이다. 공자가 꿈에 주공을 만난 일에 비길 만하다.

    * 夢 : 꿈 몽. *見 : 볼 견.

    *. 周 : 두루 주. * 公 : 귀인 공.

    동방한학연구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