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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기가 무서워”-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9-07-30 20: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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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 인기 유튜버인 박막례 할머니가 무인 주문기기인 ‘키오스크(Kiosk)’가 설치된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주문하는 영상을 보게 됐다.

    올해 72세인 박 할머니는 손녀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큰 인기를 얻으며 연예인들을 만나고 미국 구글 본사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이런 박 할머니도 햄버거 매장에서 기계를 이용해 주문을 하면서는 보통의 노인들처럼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주문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아 상품을 쉽게 누르지 못하고 작은 글자를 읽지 못했다. 또 선택을 고민하다 시간이 초과돼 처음 화면으로 돌아가자 당황하기도 했다. 여기다 주문기기엔 포장을 뜻하는 ‘테이크아웃’, 감자튀김을 말하는 ‘프렌치프라이’ 등 외국어들이 적혀 있어 주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과정에 할머니는 “무서워”, “못하겠다”며 곤혹스러워했다.

    할머니는 손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주문에는 성공했지만,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주문기기 사용법을 어떻게 알려주겠느냐는 손녀의 물음에 “돋보기 쓰고 영어 공부 좀 하고 의자 하나 챙기고, 카드 있어야 된다”고 얘기할 거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그나마 옆에 손녀도 있고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지만, 손님들이 줄지어 대기하는 상황에서 처음 주문을 한다면 중년층도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50대 이상이 좋아하는 가수 나훈아 공연의 예매자 80%가량이 20, 30대다. 이유를 알아보니 컴퓨터 등으로 예매를 하기 어려운 부모들을 위해 자식들이 티켓을 예매하기 때문이란다. 이 공연은 예매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컴퓨터에 능하지 않으면 티켓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도 지난해 아내가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려고 딸을 시켜 부산 공연 티켓을 예매했는데 원하는 티켓 4장 중 3장만을 확보해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기도 했다.

    또 내년 9월부터는 종이통장의 유료화가 추진되고 있다. 종이통장의 발급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종이통장이 감소하면 은행은 비용 절감도 되고, 통장 정리와 재발급 요청 등의 업무도 줄어든다.

    하지만 은행들이 지점을 매년 줄이고 있는 데다 통장 발급까지 줄인다면 인터넷뱅킹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은행을 찾아 거래하는 이들의 소외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뱅킹과 교통편·공연·경기·영화 예매,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 마트 자율계산대 등 일상생활에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사례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상품 유통 과정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는 비대면 방식의 서비스 기술이 대중화되면서 무인 주문기기처럼 직원이 있어야 할 자리를 기기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 차원에서는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기기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기기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한편에서는 기기에 밀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간다. 디지털 시대가 불편하고 두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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