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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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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당신은 꼭 태어나야 할 사람이다- 황수빈(작가)

  • 기사입력 : 2019-07-31 20: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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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매월 첫째 날이면 어김없이 우편함에 도착하는 간행물이 있었다. 나이 많은 노인의 모습이 표지에 실린, 음성 꽃동네로부터 날아오는 소식지였다.

    전쟁 직후 헌 옷이나 폐품을 줍던 넝마주이처럼 옷은 닳고 헤졌다. 벙거지 모자에 망태기를 멨다. 덥수룩한 수염에 찡그린 눈. ‘거지성자, 작은예수’로 불리는 걸인들의 아버지, 최귀동 할아버지다. 나는 할아버지와 그의 발아래 적혀 있던 문장을 잊지 못한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는 사람이 태어날 필요가 있을까?’ 얻어먹으며 무임승차하는 삶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이삿짐을 나르고, 컴컴한 공장에서 숟가락을 찍는 부모님을 보면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밖에 없는 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은 주님의 실수가 아닐까.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모두에게 이로울텐데.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 때문일까. 영재라고 믿었던 아들이 경기를 시작했다. 단순 고열 경기라던 증상은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양팔에 수없이 달린 링거를 모두 빼냈을 때, 아들은 뇌전증 환자가 되었다. 세 살이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가진 아이. 많이도 울었다.

    아이의 병으로 삶의 의지를 모두 잃었을 때, 다시 살아보자는 용기를 갖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내 아이였다. 밤새 온몸이 뻣뻣해지는 고통을 겪고도 아침이 되면 툴툴 털고 일어난다. 주방으로 달려와 품에 안긴다. “엄마, 정말 잘 잤어. 행복한 아침이야.” 고통받은 몸을 일으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아이에게서 삶의 희망을 보았다. 살아 있는 존재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꼈다.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종종 잊어버린다. 성취와 결과에 집중한다. 결핍과 부족을 불행과 연관짓는다. 질병과 고통을 가치 없음으로 여긴다.

    고통 속에서 어두운 밤을 보냈지만 힘껏 달려와 품에 안기며 “행복한 아침”을 외치는 내 아이의 표정과 말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야 할 이유와 존재의 가치를 새긴다. 부족하고 아쉬운 인생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라 진정 감사할 수 있기를.

    황수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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