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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황수빈(작가)

  • 기사입력 : 2019-08-07 20: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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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아이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씨앗을 키운 적 있다. 온 가족이 물도 주고 볕도 쬐며 정성을 다했다.

    정성이 조금 지나친 탓일까. 며칠 후부터 줄기와 잎이 누렇게 마르고 맥없이 시들고 말았다. 조바심이 났다. 더 정성껏 물을 주었고,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며 안간힘을 썼다. 결국은 생기를 잃어버렸다. 그만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아들은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뇌수막염인 줄 알았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환자가 되어버렸다. 어디가 부러져 수술로 나을 병이면 좋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낫게 만들겠다.’

    울면서 몸서리를 치는 아이 손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두려워 바지에 오줌을 싸도 온몸으로 아이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약이 너무 쓰다고 우는 아이의 입을 벌려 남은 한 방울까지 삼키게 했다. 낫는다는 말을 듣고, 나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더 이상 시도해 볼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절망적인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바라보고, 함께하며 시간에 몸을 맡겼다. 아이에게 마구 들이붓던 햇빛과 물을 줄이고 기다렸다. 서두름과 조급함을 내려놓았다. 빨리 나을 거라는 기대도 접어두었다.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느림을 배웠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시간과의 싸움을 서서히 이겨내기 시작했다.

    딸이 가져왔던 씨앗과 줄기는 결국 말라버렸지만, 아들은 다시 생기를 찾고 가족 곁으로 돌아와 주었다. 여전히 투병중이긴 하지만, 우리 가족은 안정을 찾았다.

    시련과 고통을 만나면 빨리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안간힘을 쓰며 조바심 낸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불안하고 조급해지려 할 때면 딸아이가 가져왔던 씨앗을 떠올린다. 삶에서 만나게 되는 거대한 비와 바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다림이라는 것을.

    가만히 숨을 고른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고요해진다.

    황수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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