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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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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몸 냄새, 마음 냄새- 서영수(수필가)

  • 기사입력 : 2019-08-08 20: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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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아버지, 냄새 나요!”

    꼬마 아이가 환한 미소를 띤 할아버지 품에서 찡그린 얼굴로 던진 말이다. 영문을 모른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채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나이가 들면 몸에서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이고, 방안에도 ‘노인 냄새’가 똬리를 틀고 있다. 냄새의 원인은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에 있다. 피지 속의 지방산이 산화되면서 생성되는 물질이 ‘노넨알데하이드’인데, 모공에 쌓여 부패하면서 퀴퀴한 냄새를 유발한다. 자주 씻어야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다.

    여러 해 전이다. 아내와 함께 남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남녘 땅끝에서 맡는 비릿한 갯내음은 프랑스의 고가 향수와 비교할 바 아니었다. 송지면의 저녁놀은 기어코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운림산방에서는 소치 허련을 만났다. 남종화의 멋과 그림에서 풍기는 멋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아주 큰 수확이었다. 두륜산 정상에 서니 세상을 모두 품은 듯 가슴이 넉넉해졌다. 해남의 한정식을 맛보고야 남도의 맛과 향을 알 수 있었다.

    아침 해는 찬란했고, 신선한 공기에 마음이 상쾌했다. 즐거운 둘째 날의 여행을 기대하며 버스에 오르니 노인 냄새가 코를 거슬리게 했다. 외모가 말쑥한 두 분의 중년 아주머니에게서 나는 냄새였다. 밖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좁은 실내에 냄새가 퍼지자 숨 쉬는 것이 고역이었다. 자리를 옳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 번 앉은 자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바꿀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견디고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니 씻는 것도 귀찮다.”

    오늘 아침에도 세수만 했노라며 넋두리를 늘어놓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서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이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경우가 흔하다. 몸을 씻는 것보다 자신의 얼굴 단장에 신경을 쓰는 탓이다. 그래도 육신의 냄새는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더러움으로 냄새를 풍기면 씻을 수 없는 화를 부르게 된다. 남의 가슴에 치유할 수 없는 생채기를 만든다. 한 줌밖에 안 되는 권력으로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려 드니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들기는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지위가 높다고, 많이 배웠다고, 혹은 나이가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측은지심보다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옹졸함이 가득 찼으니 착하고 어진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아는 사실을 정작 본인만 모를 뿐이다.

    돈 때문에 굽신거리는 것을 내가 어찌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금권이 다 그런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한다면 사람을, 세상을 아주 무시하는 발언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다. 세간에 떠들썩한 재벌들의 일탈도 이런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지기 힘든 권력일수록 탐을 내기 마련이니 보통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몸 냄새도 문제지만 마음 냄새는 참으로 고약하다. 주홍글씨 같아서 아무리 씻어도 없앨 수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나에게서도 악취가 풍기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할아버지! 좋은 냄새는 어디에서 나는 것이에요?”

    꼬마의 환한 얼굴을 보고 싶다. 당당한 외침을 듣고 싶은 것이다.

    서영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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