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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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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빨간 피터의 고백을 아십니까?- 이선중(시인·문학박사)

  • 기사입력 : 2019-08-15 20: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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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피터의 고백’을 아십니까?

    이는 카프카의 단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각색하여, 우리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난 70년대 최고의 연극배우 추송웅씨가 무대에 올린 연극 제목이다. 그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6개월 동안 틈만 나면 창경원으로 달려가서 원숭이를 관찰하며 자신을 빨간 피터로 동화시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원숭이의 동작이나 모습을 모방하는 데 한계를 느낀 추씨가 하루는 사육사에게 간청하여 원숭이 우리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 속에서 원숭이의 용변과 체취, 음식물 등이 섞여 나는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원숭이와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추씨는 비로소 자신이 영혼까지 원숭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공연이 80년 연극사에 한 획을 긋는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떤 존재의 실체나 본질은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파악할 수 없고, 그 속에 뛰어들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든 예이다.

    최근 일본이 불순한 의도로 우리 경제를 겁박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정권 자체를 흔들어 보려는 속셈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이다. 얼마간 일본의 의도대로 우리 국민이 고통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국엔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일본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하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결코 그들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모래알 같은 국민이지만 어떤 계기가 생기면 바위처럼 뭉치고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근성이 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촛불로 권력자를 교체하는 국민이고, 수십만 명이 붉은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서 한 몸처럼 응원하는 보기 드문 나라다. 몸을 부딪치는 운동 경기에선 우린 늘 열 배 이상의 인프라를 가진 일본을 주눅 들게 했다. 적어도 우리 민족의 피와 영혼 속에 일본에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DNA가 원초적으로 있다고 본다.

    왜 한국인들은 유독 일본에는 모질도록 강할까? 일본인들이 그런 의문에 올바른 답을 얻으려면 우리의 우리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이 만든 우리 민족의 상처와 고름을 보고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지난 역사와 삶의 터전과 몸뚱이와 영혼 속에 그들이 짓밟고 새겨놓은 상흔들이 얼마나 깊고 고약한지를 자신들이 몸소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소통과 공존의 시대다. 과거 불행한 역사 속에 아직도 그 상처로 고통받는 분들이 있는 한,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 그를 바탕으로 상호 간에 화해하고 소통하며 나아가 공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우리가 100년 전의 우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는 한없이 미약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100년 만에 또 다른 ‘대한독립 만세’를 외칠 때가 왔다.

    이선중(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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