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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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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지금, 여기, 행복- 황수빈(작가)

  • 기사입력 : 2019-08-22 20: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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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나와 가족의 삶은 통째로 바뀌었다. 검사 오더가 쏟아지고, 약이 늘어만 갔다.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자책과 원망이 전부였다.

    우리가 있던 병동에는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는 아이가 있었다.

    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고, 콧줄에 넣어주는 유동식을 먹었다. 아이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튼을 열어 햇빛을 쪼였다.

    그날의 날씨를 들려주고, 아이의 기분을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살짝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뒤이어 얼굴과 손을 닦았다. 스마트폰 동요를 켜고, 아이를 바라보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경험하는 세상은 병실 천장과 스마트폰 동화가 전부였다.

    “힘들지 않아요? 전 앞으로 이 애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걱정되고 두려워요.” 내 말을 들은 아이 엄마는 빙그레 웃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저와 아이는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고, 함께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요.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요.”

    서로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자 행복이라 말하는 엄마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존재 가치를 의심했던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엄마. 엄마 잘 잤어? 나는 잘 잤어.” 밤새 고단했을 텐데(지난밤에도 경기를 했다.) 아이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엄마를 부르는 잠이 덜 깬 쇳소리 나는 목소리와 환한 미소는 행복한 오로라였다.

    현실을 원망하느라 반사시켜 왔던 행복한 오로라가 온전히 쏟아져 들어왔다.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고 믿었다. 필요조건을 성취하지 않은 삶은 불행하다고 느꼈다. 덕분에 늘 불평하며 살았다.

    행복에는 필요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살아 숨 쉬고 함께 마주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 행복임을.

    가끔씩 삶의 무게에 지칠 때면, 병동에서 만난 그 엄마의 미소와 함께 삶의 진리를 떠올려본다. 살아있음에, 함께 있음에, 지금 여기가 행복임을.

    황수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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