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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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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57) 제24화 마법의 돌 157

“난 기억에 없는데…”

  • 기사입력 : 2019-08-28 07: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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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영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차를 마셨다. 김태준도 차를 천천히 마셨다.

    “나를 왜?”

    “자네가 요정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요정왕이라면서?”

    김태준이 낄낄대고 웃었다.

    “누가 그래?”

    이재영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요정을 몇 개 경영하고 있다고 이상한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이봐. 친구에게 기생 맛 좀 보여줄 수 없겠나?”

    “무슨 소리야?”

    이재영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진짜야. 나는 요정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어.”

    “요정이 뭐가 특별한가? 그리고 자네도 일본에서 대학에 다닐 때 요정 출입을 했었잖아?”

    김태준은 황해도 해주의 갑부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의 부친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가세가 빠르게 기울었다. 독립운동에 재산을 모두 바쳤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의 부친은 만주에서 일본 밀정에게 죽고 그는 가난하게 살았다. 김태준도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몇 번이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태준은 아버지와 달리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일본에서야 했지. 그때는 가세가 기울기 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결혼을 한 뒤에는 한 번도 못 가봤어. 마누라 성격이 보통이어야지.”

    “그럼 지금은 마누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나?”

    “마누라 죽은 지 1년 쯤 되었어. 지금은 홀아비야.”

    이재영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아내가 죽었다는 것은 처음 듣는다. 사업을 하면서 기이하게 왕래가 없었다.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도 얼굴을 몰라봤을 정도였다.

    “서울 장안의 요정은 모두 자네 거라며?”

    “누가 그래?”

    “내가 자네를 일본 요정에 데리고 갔던 건 기억하지?”

    “난 기억에 없는데….”

    이재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김재영으로 인해 일본 요정을 처음 갔었다. 기모노를 입은 게이샤를 품었던 일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해질 무렵에 사무실로 다시 오게.”

    이재영은 김태준과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성북동에 있는 요정 청운각에 두 사람 술상을 차리라고 지시했다. 성북동의 요정 청운각은 친일파 송철한의 별장을 사들인 뒤에 요정으로 바꾸어 기생 연심에게 운영하게 했었다. 요정이 성북동 골짜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김태준이 사무실을 나가자 이재영은 허정숙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 들렀다.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한 뒤에 허정숙과 이야기를 했다.

    “요정 때문에 바쁘신가 봐요.”

    허정숙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젊은 귀부인처럼 보였다. 귀에는 귀걸이까지 하고 화장도 연하게 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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