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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원로 서예가·한학자 허한주 선생

한 자루 붓에 ‘혼’ 담고 기부로 사랑 나누고

  • 기사입력 : 2019-08-29 20: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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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는 지난해 2월 12일 시청 본관 이든카페에서 재단법인 김해시인재육성장학재단에 장학기금을 기부한 분들의 소중한 뜻을 기리기 위해 ‘장학기금 기부자 명예의 전당’ 제막식을 가졌다.

    허성곤 시장과 시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명예의 전당 제막식은 지난 1992년 인재육성장학재단이 설립된 이후 그때까지 기부한 개인·단체·기업 등의 소중한 분들을 예우하고, 그 뜻을 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그 당시까지 500만원 이상 기부한 84명을 대상으로 한 이날 행사는 카페 내에 명예의 전당을 설치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이고 재단으로부터 감사패까지 받은 이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 주인공은 원로 서예가이자 한학자인 벽암(碧岩) 허한주(88) 선생이었다.

    벽암 허한주 선생이 벽암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벽암 허한주 선생이 벽암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행사가 열리기 몇 달 전에 사별한 아내의 유지를 받들어 장례식 때 들어온 부의금에다 아내가 평소 아껴 모아놓은 돈을 합쳐 1억원을 2017년 12월 29일 재단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했다. 그래서 명예의 전당에는 선생과 고인이 된 아내의 이름이 같이 올라 있다.

    이날 행사에서 선생은 장학기금 기부자 명예의 전당에 자작 한시(漢詩)를 헌정하기도 했다. ‘가야발전창성휘 서기경천백일명 추적전당양괘리 시민온정환호희(加耶發展昌成輝 瑞氣擎天白日明 推蹟殿堂揚掛裡 市民蘊靜歡呼禧’(가야가 발전하여 창성하게 빛나니, 하늘이 서기를 받들어 백일하에 밝구나. 선행자 추적하여 전당에 게시하니, 시민 모두가 따스한 정성으로 환호성이 기뻐지네.) 이 한시는 지금도 명예의 전당에 게시돼 있다.

    벽암 선생이 장학기금 1억원을 기탁한 것은 2017년 11월 사별한 아내의 유지와 4남1녀 자녀들의 효심과 무욕(無慾) 때문으로 보인다.

    아내 장례를 치르고 나서 자녀들이 선생에게 “아버지, 어머니 장례 치르고 7400만원 남았으니,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하자, 선생은 “너희들 보고 들어온 돈이니 너희 알아서 사용해라”고 했다 한다. 그런데도 자녀들은 한사코 “우리 보고 들어온 게 아니고 어머니 돌아가셔서 들어온 것이니 아버지가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강권했다. 돈 처리를 놓고 며칠 고심하던 선생은 우연히 아내가 자신 몰래 예금해놓은 3000만 원짜리 예금통장을 보게 됐고 두 돈을 합쳐 ‘평소 배움이 짧은 것을 아쉬워했던’ 아내가 떠올라 좋은 데 쓰기로 마음먹었다.

    선생은 두 돈을 합친 1억400만원으로 우선 김해인재육성장학재단에 아내와 공동 명의로 1억원을 기부했다. 그리고 100만원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에, 100만원은 노인복지회관의 무료급식비에, 100만원은 김해지역 신문이 운영하는 ‘천원밥집’에 기부했다. 선생은 남은 100만원은 아내 장례식 때 찾아준 친구들에게 밥을 샀다고 말했다. 선생은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인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게 돼 아내도 아주 기뻐할 것”이라며 웃었다.

    선생은 1931년 김해 외동 출신이다. 조부는 당시 김해에서 대단한 유학자였고, 부친도 상당한 유학자였던 것으로 선생은 기억하고 있다. 6세 무렵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우기 시작한 선생은 얼마 있다가 인근 외동서당에서 훈장선생님으로부터 천자문을 본격적으로 익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천자문 가운데 500자 정도는 제대로 이해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초·중·고·대학 시절과 김해군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1960년대 후반까지는 한문과 담을 쌓고 지냈다.

    이후 교육 공무원으로 전직하고부터 어릴 때 배웠던 한문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교육행정직으로 학교에 근무하면서 퇴근시간 지나고 꼭 한 시간씩 서예와 한문 공부를 독학으로 했다.

    선생이 서예와 한학에 눈을 뜬 시기는 정년퇴직(1989년) 이후라고 한다. 경북 경주 출신이면서 김해에서 서실을 운영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와암(臥岩) 이한우 선생으로부터 서예와 한학을 사사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능한 스승 덕분인지 선생의 실력도 이때부터 시서화 모두 일취월장했다.

    그 결과 1997년 일본 오이타현에서 열린 국제서예대전인 운룡전(雲龍展)에서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왕희지의 행서 시첩)로 대상을 수상했다.

    선생의 서예 관련 국내 수상 기록은 엄청나다. 전국창작미술대전 입선 5회·특선 2회, 대한민국서화대전 미술대상전 입선 5회·특선 3회·초대작가상 2회, 성균관 유도대전 입선 3회·특선 1회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서예 관련 유명 상인 율곡상 추사상 설송문화상을 받기도 했으며, 김해예총 예술공로상과 김해시 예술공로상, 김해시문화상, 대통령 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충남 예산에 있는 한국서예비림협회의 비림박물관 서화관에도 선생의 작품이 새겨져 있다.

    조금은 늦게 서예에 뛰어들었지만 전시회도 만만찮게 했다. 개인전 3회(김해문화원 문화의전당 선갤러리)에 단체전 및 국제교류전은 200회를 넘는다. 구순을 앞둔 나이에도 활동도 왕성해 현재 한국미협김해지부 고문, 경남원로작가회 부회장, 김해원로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선생의 이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야사 연구에 있어 귀한 문헌으로 평가되는 ‘가락국기(駕洛國記)’ 전문을 담은 서예 작품을 김해시에 기증한 일이다.

    지난 5월 10일 김해시청에서 열린 시승격 38주년 김해시민의 날 행사에서 제23회 김해시 문화상을 수상한 선생은 행사 후 허성곤 시장을 만나 가락국기 전문 필사 작품을 기증하며 “물실호기(勿失好機·결코 잃을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가야사 복원에 미약하나마 붓의 힘을 보태고 싶었다”는 뜻을 전했다.

    허한주(왼쪽 세 번째) 선생과 허성곤(왼쪽 두 번째) 김해시장이 가락국기 전문 필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경남신문DB/
    허한주(왼쪽 세 번째) 선생과 허성곤(왼쪽 두 번째) 김해시장이 가락국기 전문 필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경남신문DB/

    가로 35㎝, 세로 135㎝ 크기 화선지 16장에 장당 240~250자가 빼곡하게 적힌 이 작품은 총 글자 수만 3961자에 이를 정도의 대작이다.

    이 작품은 작품 완성까지 한 달 정도가 소요될 만큼 고령의 선생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썼다. 평소 구양순체(해서)를 골조로 한 역동적이고 선 굵은 필치가 특징인 선생 특유의 서체가 오롯이 녹아 있어 서예의 맛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락국기는 고려 문종 때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로서 완전한 내용은 전하지 않으나 삼국유사 제2권에 요약된 내용이 남아 있어 가야사에 대한 문헌 사료로 널리 쓰이고 있다.

    또 김해김씨 집안의 역사서인 숭선전지(崇善殿誌)의 첫머리에도 가락국기가 등장하는 등 오늘날 가락국의 왕조사를 엿볼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있다는 평이다.

    선생의 필사 작품은 삼국유사 요약본과 숭선전지본 모두를 참고해 완성해 가락국기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해시는 선생이 기증한 작품의 원본은 병풍 표구 후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며 사본은 도시디자인 조형물 등 도시 곳곳에 김해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자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선생은 글을 쓸 때 구양순체(해서)를 가장 즐겨 쓰는 편이고, 다음으로 왕희지체(행서)를 많이 쓴다고 한다. 시와 그림도 틈틈이 쓰고 그려, 수년 전 벽암시서화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묻자, 선생은 논어의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백 번 참으면 집안이 크게 화합한다)를 들려주었다.

    좁은 벽암서실을 나오는 기자에게 “(나라든 가정이든)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돕고 화합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종구 기자 jg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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