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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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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논문 제1저자의 영예와 자격- 박갑제(경남대 경제금융학과 학과장)

  • 기사입력 : 2019-09-01 20: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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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어고 2학년 학생이 2주간의 인턴과정 참여로 의학전문 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했고 또 이 경력을 활용하여 명문대학에 입학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면서 대한민국이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서 다른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해당 학술지 수준이 낮으며, 논문이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 후 두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인 결과를 열거한 게 전부라며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반나절 정도만 자세히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 고등학생이 제1저자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국 후보자도 이 주장에 동의하는지 이 네티즌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걸었다고 한다.

    필자는 의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같은 연구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주장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으며 학술논문 작성과 저자의 역할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제1저자는 그 논문이 만들어지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영예다. 실증적 연구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자료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임상자료에 기초한 연구에는 자료 획득이 매우 중요한 작업이고 제1저자라면 당연히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채집과정에 오류가 없는지를 엄밀하게 통제해야 할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고등학생은 그러한 임상자료에 대한 접근 자격이 원천적으로 배제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학생의 인턴 시기는 자료 채집이 이미 끝난 이후였다. 앞서의 주장에서 논문 내용이 단순한 통계적 처리가 전부여서 고등학생도 제1저자 자격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논문 작성을 제대로 해 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전문영역의 논문은 전공분야의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런데 보통의 고등학생 수준이 이해하기가 가능하다면 오히려 이 논문은 숙련된 연구자에 의해 작성된 매우 잘 쓰여진 논문일지언정 고등학생도 쓰기 쉬운 논문이라고 폄하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제1저자라면 논문이 가지는 학술적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의미라고 하는 것은 논문에 사용된 많은 의학적 전문용어의 사전적 및 학술적 의미, 두 군 사이의 유의적 차이가 가지는 함의,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향후 가능한 의학적 처방에 대해 가지는 함의 등을 말한다. 2주간 인턴에 참여한 외국어고 학생이 논문의 그러한 의미들을 과연 알고 있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어떤 사태의 진상을 모른다면 어떤 것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국어로 만들어진 논문초안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역할을 한 번역가는 제3, 제4저자로도 이름을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모로 보아서 조 후보자의 딸은 해당 논문의 제1저자로서의 자격이 어렵다고 하겠다.

    법무부 장관의 영어적 표현은 정의부 장관(Ministry of Justice)이라고 한다.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하는 행정 부서의 수장이라는 의미다. 조 후보자는 지난 시기, 한 강연에서 고대 그리스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를 ‘더 강한 자의 편익’으로 정의한 것을 소크라테스가 비판하는 플라톤의 〈국가론〉의 한 부분을 소개한 적이 있다. 옳은 비판이다.

    정의는 더 강한 자의 편익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정의란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걸 의미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의 공적 영역인 학술지 논문의 제1저자 자격은 아비가 자식에게 용돈 주듯이 지도교수가 마땅한 노력을 하지 않은 고등학생에게, 그것도 대학입학을 도우려고 무심히 주어도 무방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정의롭지 못하다.

    만약 논문에 쓰일 자료를 채집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대학원생보다 기여가 작은 자가 더 많은 영예를 가져간다면 그 정의는 특권층이 향유하게 되는 ‘더 강한 자의 편익’이 될 뿐이다.

    대중은 그와 같이 자격 없는 사람이 그런 영광된 영예를 차지하고 그에 더 나아가 그것을 이용해 소위 명문대학 입학이라는 영예까지 차지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박갑제(경남대 경제금융학과 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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