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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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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벌초-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19-09-02 20: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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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4년 흥선대원군은 충남 예산 천년고찰인 가야사를 불태우고 경기 연천에 있던 선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 유명한 지관이 이곳에 2대 천자지지(天子之地)가 있으며, 홍성 오서산에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다고 하자 왕의 자리를 택했다. 가야사 터에 묘를 쓴 덕인지 1863년 아들 고종이 보위에 오른다. 이후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사건에 연루돼 고종이 물러나고, 손자인 순종이 등극했다. 공교롭게 예언대로 두 명의 왕을 배출했지만 조선은 멸망했다.

    ▼매장문화와 명당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조상 묘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자손의 명운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은 동양 문화권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명당의 기본인 풍수지리는 땅의 기운을 인간의 길흉화복과 연결 짓는 이론이다. 풍수는 조선 전기 도읍지·절터·집터를 정하는 양택(陽宅)에서 조선 후기 조상의 묏자리를 찾는 음택(陰宅)으로 변했다. 좋은 묘를 쓰려는 욕심에 남의 땅에 몰래 장사 지내는 투장(偸葬)까지 성행했다.

    ▼명당은 특히 권력자의 관심을 끌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에 연이어 실패하자 유명한 지관으로부터 명당을 소개받아 1995년을 전후해 부모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옮겼다. 명당 효과였는지 2년여 후 대통령에 당선됐다. 명당이 많다고 알려진 용인에는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 등 정·재계와 종교계, 문화계 유명 인사들의 묘가 즐비하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의 풀을 베어 정리하는 벌초가 한창이다. 후손이 정성을 표현하는 전통이며 중요한 집안 행사다.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화제 가운데 하나가 풍수다. 명당에 대한 믿음은 현실적 득실을 넘어 후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내리사랑의 기대다.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하면서 장례문화는 화장이나 수목장으로 변하는 추세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벌초도 기억에서 사라질 날이 머잖은 듯싶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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