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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상호 관용과 자제- 전찬열(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 기사입력 : 2019-09-22 20: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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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소 냉전을 거쳐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다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져 패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을 비롯하여 미국과 러시아가 맺었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후 재래식 미사일 증강 경쟁, 이란 핵 협정 파기에 따른 중동 갈등,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한일갈등, 북한의 핵 위협 등이 고조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내부적으로도 미국 정책을 둘러싼 트럼프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한 대립,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의 갈등, 조국 장관 임명을 두고 벌어지는 한국 국회 파행 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일당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와 여당이 경쟁하는 당을 적으로 간주하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장치가 마비되는 정쟁 속에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이 노출되고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라는 저서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논하고 있다. 미국 정치 시스템의 강점은 미국적 신조(American Creed) 즉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있고, 미국 건국 헌장에 등장하고 끊임없이 언급되면서 절대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그 가치는 스스로 발현되지 못하며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두 규범은 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치인들에게 말해준다. 이러한 절차적 기반은 미국적 신조의 핵심이며 그것이 없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

    상호관용이란 경쟁자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개념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의지이고 상대 당이 적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하는 경쟁자로 보는 것이다. 제도적 자제는 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 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다수의 횡포로 상대방을 거칠게 밀어붙이고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상호관용과 자제는 밀접하게 얽혀 있고 서로를 강화한다.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일 때 자제의 규범도 기꺼이 실천되며, 상호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묵자는 비공(非攻)에서 전쟁의 부당함과 불리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고 재물을 빼앗기 때문에 의롭지 못하다. 둘째, 설사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많은 생명과 물자를 희생하므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셋째, 전쟁을 좋아하면 일시적으로 성공하더라도 결국 망하고 만다. 묵자는 전쟁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이나 쟁탈은 자기와 남을 구별하여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기인되는 것이므로 남과 나, 남의 것과 나의 것을 구별하지 말고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서로 이익이 된다는 겸애교리(兼愛交利)를 주장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군사, 경제, 정치 등 각종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고 응징하여 말살하려는 유혹은 끊임없는 전쟁을 부른다. 역사에서 전쟁의 유혹으로 수많은 희생을 남겼음에도 전쟁은 반복되고 있다. 박재삼 시인은 ‘천년의 바람’이란 시에서 바람을 빗대어 반복되는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다인종, 다민족, 다종교 사회에서 평등과 자유를 지키고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상호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지켜지고 확산되기를 기원한다.

    전찬열(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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