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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73) 제24화 마법의 돌 173

“내가 술도 가져왔어요”

  • 기사입력 : 2019-09-23 07: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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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중들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이재영은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손에서 진땀이 배어났다.

    “때려 죽여라!”

    군중들의 함성이 더욱 높아졌다. 그러자 연단의 장정이 몽둥이로 김삼룡을 내리쳤다. 김삼룡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완장을 찬 사내들이 다투어 김삼룡을 때렸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김삼룡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사람을 때려죽이다니.’

    이재영은 공포 때문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자신도 몽둥이로 맞아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내 인민재판이 끝났다. 완장을 찬 사내들이 김삼룡을 끌고 연단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계단을 내려올 때 김삼룡의 머리가 덜렁거렸다.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이재영은 서둘러 동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거리 곳곳에 나부끼고 있는 깃발이 죽음의 깃발처럼 보였다. 동굴로 돌아오자 막막했다. 인민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국군은 계속 남쪽으로 쫓겨 가고 있었다.

    날씨는 숨이 막힐 것처럼 더웠다. 어느덧 7월 중순이 되어 있었다.

    며칠 동안 불볕더위가 계속되더니 비가 내렸다. 이재영은 동굴 앞에서 비가 오는 것을 내다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해질 무렵에 말자가 비를 맞고 동굴로 올라왔다.

    “비 오는데 어떻게 왔어?”

    적막한 산속이었다. 말자가 올라온 것이 반가웠다.

    “아저씨 혼자 지내기가 심심할까봐요.”

    말자가 배시시 웃었다. 어쩐지 눈에서 요기가 뿜어지는 것 같았다.

    “어두운데 빨리 내려가.”

    이재영은 음식 바구니를 받아놓고 말자에게 말했다. 속으로는 말자가 내려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동굴에서 지내는 일이 외롭고 쓸쓸했다.

    “안 내려갈래요. 빗줄기가 더 굵어지고 있어요.”

    말자가 옷을 벗어 빗물을 짜기 시작했다. 이재영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말자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내려갈래요.”

    “너는 인민군이 무섭지 않아?”

    “나는 거지 출신이라 인민군들이 안 잡아가요. 아저씨, 내가 술도 가져왔어요.”

    “술을 어디서 구했어?”

    “장군의 집이잖아요. 쌀도 나오고 반찬도 배급이 나와요.”

    이재영은 기이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군의 집이라 공산당에서 물자를 공급해주는 것 같았다. 이재영은 말자가 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면서 술을 마신 뒤에 자리에 누웠다. 밤에는 불을 켤 수 없어서 잠을 자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이재영은 며칠 전에 본 인민재판 광경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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