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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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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강재현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배움의 기회’ 제공할 것”
1977년 노산 이은상 권유로 시작해 26일 합포문화강좌 500회 금자탑
조민규 전 이사장과 인연으로 1993년부터 활동하다 3대 이사장 맡아

  • 기사입력 : 2019-09-25 21: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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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재현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강재현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경제가 아무리 풍요롭다 하여도 정신문화가 뒷받침이 안 되면 허망한 일”이라는 기치 아래 시작된 민족문화강좌가 500회를 맞았다. 합포문화강좌를 주관하는 (사)합포문화동인회는 인문학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77년 창립돼 42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재현 변호사를 만나 시대의 흐름이나 정치, 경제에 휘둘리지 않고 시대정신을 밝혀온 시절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합포문화동인회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1977년 노산 이은상의 권유로 결성한 것이 모태가 됐다. 우리말과 글을 가꿔 얼을 지키자는 표어와 함께 우리 고장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에 동감한 이들 20여명이 모여 모임이 꾸려졌다.

    합포문화동인회 전신인 민족문화협회 마산지부라는 이름으로 조민규 지부장을 선임해 제1회 강좌를 열었다. 이후 1983년 합포문화동인회로 이름을 바꿨고 1996년엔 33명의 발기인으로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마련했다. 매달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가장 내세울 만하다. 강좌를 빼먹은 달은 강사를 태운 비행기가 결항된 3번 정도가 전부다. 심지어 계엄령 때에는 집회허가를 받아 안기부 요원, 경찰 정보관들이 지켜보는 분위기에서도 강좌를 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하는 단체인가.

    합포문화강좌, 영리더스강좌, 여성을 위한 강좌, 교육포럼, 세미나 등 강연 프로그램과 노산가곡의 밤, 합포조민규봉사상, 야간학교 운영 등 문화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500회를 맞은 합포문화강좌가 가장 대표적이다. 1977년 3월 17일 이은상 선생의 ‘충무공의 구국정신’의 제1회 강연이 열린 지 42년 6개월 동안 지속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국제정세 등 다양한 주제를 지역민에게 편견없이 전달하려 애쓰고 있다.

    -‘변호사’ 강재현이 제3대 합포문화동인회의 수장이 됐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학교 다닐 때 아버지를 따라 강좌를 들은 게 첫 만남이었지만 본격적인 인연은 1993년 서울에서 내려와 마산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다. 그때 한길적십자봉사단체에 가입했는데, 조민규 당시 사무처장을 만나 합포문화동인회 활동에 동참하게 됐다. 좋은 모임이 지속되려면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사단법인 발기인으로 참여하게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강좌를 반쯤 참석하지 못했는데, 고문을 맡고 있는 조민규 전 이사장이 언짢아하는 게 아니라 참석해 줘 고맙다고 인사하시더라. 꾸준히 이끌어가는 선배들의 희생에 부채의식이 생겼다. 결정적으로 조 고문의 ‘기다림의 미학’에 반해 다른 일을 제쳐놓고 매달 강좌를 듣게 됐다.

    이사장을 맡고 있지만 회원들과 십시일반 함께 꾸려나간다고 생각한다. 선배님들이 여전히 건재하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다. 분야별 준비위원장이 있어 이번 500회 행사 준비도 유기적으로 잘 진행됐다.

    -주제 선정과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주제를 잡을 때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려 한다. 초빙 강사에게 묵직하고 꼭 배워야 하는 주제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매달 강사를 초빙하고 장소를 섭외해야 해 발생하는 비용이 꽤 든다. 조 고문은 설립 당시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 경남 제1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아 인맥이 꽤나 있었지만 스폰서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에서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단체다 보니 정치권에서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틈을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자발적인 후원과 현직 정치인 섭외 배제 원칙은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회원들의 후원금과 창원시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합포문화강좌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강사를 초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섭외 비결과 에피소드가 있다면.

    두 가지 비결이 있다. 첫 번째는 켜켜이 쌓인 ‘세월’이다. 40여년의 시간 덕분에 한 번쯤 다녀가지 않으면 지식인 축에 끼기 어렵다는 농이 나올 정도로 이름이 알려졌다. 다녀간 강사가 다른 강사를 추천하곤 하는데 가능하면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추천해 강사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재능기부 릴레이하듯 참여해줘 1년치 강사 리스트를 확보할 만큼이 됐다. 정치색을 띤 강연자는 섭외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인데 경남도지사와 경남도교육감, 창원시장은 임기 초반에 초빙한다. 지역민과 밀접한 선출직 정치인들인 만큼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선거에 영향이 적은 임기 초반에 강좌를 진행하고, 재선 때는 초대하지 않는다.

    두 번째 비결은 ‘정성’이다.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들의 전통이 있다. 강사를 마중하고 배웅하는 것이다. 강사료가 적은 데다 먼 거리를 찾아야 하는 강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려 극진하게 대접한다. 마산 골목을 체험하고 싶다고 정중히 거절한 성석제 소설가를 제외하고 다른 강사들에게는 공항이나 기차역 맞이방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플랫폼까지 꼭 나가서 인사를 했다. 손사레 치며 놀라거나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정성에 감동받았다고 기억하더라.

    -요즘엔 온·오프라인 모두 강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앞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정기적으로 오프라인에서 강연을 연다는 것이 우리 모임의 강점이다. 유튜브나 SNS는 원하는 정보가 쏟아지지만 좋아하고 관심있는 분야를 선택적으로 접한다는 점에서 편향된 시각을 형성한다는 맹점이 있다. 이 강좌는 다양한 분야를 편식 없이 다루고 있어 앎이 풍성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주제의 다양성을 추구했다면 앞으로는 견해의 다양성을 추구하고자 한다. 첨예한 주장이 있다면 반대편 의견을 연달아 강연하며 균형감을 갖도록 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합포문화동인회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모임의 성격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친목단체도 아니고 스터디 모임도 아니다. 넓은 의미의 ‘봉사단체’라고 생각한다. 문화와 배움의 측면에서 보면 욕구를 충족시켜 나누는 것이 봉사가 아닐까. 우리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강좌와 음악회 등을 준비한다. 또 청중이 많을 땐 시민들에게 양보하기 위해 서서 듣거나 밖에서 모니터로 보기도 한다.

    과거 호텔 조찬모임 형식 탓에 문턱이 높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있어 시간과 장소를 변경해 강연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또 전국의 석학이 모이는 만큼 지자체나 언론사, 학자 등 관련인들이 우리 단체를 적절히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지식의 ‘직거래’ 통로가 되겠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건축 전문가의 수업을 도나 시의 담당 국장, 계장 등 실무진이 듣고 도시 개발 의견을 구하면 도움이 되지 않겠나.

    -도민들에게 한마디.

    42년 동안 매달 강좌를 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청중’이라고 생각한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들을 수 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딸 3대가 함께 강연을 찾아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강연은 강사와 청중이 함께 지은 공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모임이 유지가 안 됐을 것이다. 다만 유능한 강사들이 뿌리고 간 씨앗이 제대로 뿌리내렸는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하고 있다. 회원들이 밥상에 숟가락까지 올려드릴테니 들을 준비를 하고 편하게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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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출생으로 마산고등학교,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경남지방변호사회 회장과 부산고등법원 조정위원, 경상대 법과대학 겸임교수 등을 지냈으며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추천한 대법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운영위원, 경남이주민센터 이사장도 역임했다. 지난해 3월부터 합포문화동인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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