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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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옆 발자국- 조은

  • 기사입력 : 2019-09-26 07:5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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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내린 골목

    고양이 발자국들

    꽃잎 같은 발자국은

    차 밑으로 빈집 대문 아래로 공터로

    선명한 발자국을 따라가자

    누가 막 놓고 간 물그릇에서

    털장갑 같은 김이 오른다

    작은 플라스틱 그릇엔

    하트 별 보름달 모양의 사료

    거기서 작은 발자국은

    맞은편에서 온 사람의 발자국과 만난다

    둘은 나란히 간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다니던

    저 사람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지난 혹한의 날씨에

    굶주린 어미가 새끼를 입에 물고

    목숨을 걸고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 시집 ‘옆 발자국’ 중에서


    ☞ 눈 내린 겨울 풍경이 눈앞에 영화 화면처럼 펼쳐진다. 순백의 공간에 고양이 발자국과 사람의 발자국이 교차하면서 얼어붙을 것만 같은 공간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온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은 아니라는 듯이 둘의 발자국이 나란히 또 따로 제 길을 만들어둔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어떤 대상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더라도 길가의 풀꽃 하나에도, 바람에 떠도는 나뭇잎 하나에도 그런 마음이 옮겨갈 때 이 세상은 조금 더 넉넉해지고 살아갈 만한 세계가 될 것 같다. 혹한의 날씨에 굶주린 어미가 목숨을 걸고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집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제대로 된 세상이다.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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