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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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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기사입력 : 2019-09-30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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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내가 나가는 한 모임에서 회비에 여유가 생겨 그 여유 자금을 의미 있게 쓰고자 의논을 했다. 이에 누가 금배지를 제안했다. 금배지를 달고 다니면 소속감과 자부심이 높아질 것이라 여겨, 대다수가 동의하고 시행되었다. 그런데 비싼 물건이니 분실이 우려되었다. 그래서 동일한 디자인의 모조품을 만들어 함께 나눠주었다.

    좀 지나고 나니 내가 옷에 단 것이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헷갈렸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진품은 소중히 잘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다른 회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금배지는 어두운 상자 속에 갇혀지게 되고,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양시켜야 하는 그 본래의 기능은 모조품이 대신하여 진짜인 양 번쩍거리며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라고 하고, 그레샴의 법칙이라 부른다. 비싼 재료의 화폐(양화)와 싼 재료의 화폐(악화)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함께 유통되면, 양화는 사라지고 악화만이 통용되게 된다는 말이다. 이는 사람들은 당연히 실질 가치가 높은 것은 소장해두고, 가치가 낮은 것을 남에게 줄 때 사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모임에서 금배지가 사라지고 모조품만이 통용되는 이유를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없다’, ‘기껏 가르쳐 놓으면 금세 다른 데로 가버린다’ 등의 이야기를 경영자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좋은 인재가 귀하고, 귀한 인재를 용케 뽑아도 지키기 힘들다는 말이다. 조직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인력이 필수적인데, 그들을 잡아두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성장은 차치하고 존속조차 기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감지되면 조직 내의 악화의 존재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인재가 떠나는 조직에 들어가보면 그들을 못 견디게 하는 부정적인 요소들, 즉 악화가 반드시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불통의 상관, 허황된 비전, 교만한 경영자, 만연된 게으름, 변화에 대한 저항, 파벌 다툼, 부도덕, 부실한 실적 평가 등.

    혹시 귀 조직이 악화의 소굴은 아닌가? 본인이 대표 악화일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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