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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사람들이 오는 이유, 사람들이 가는 이유-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9-10-09 20: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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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할배 집이 카페가 됐다 카던데 한번 가봐라.” 2~3년 전 주말 김해 고향 집에서 어머니 얘기를 듣고 가족들과 집 근처에 있는 친척 집을 찾았다. 친척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인데, 친척 형이 리모델링을 해 몰라볼 정도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예전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살려 꾸며진 가게는 예스러운 멋이 있으면서 운치가 있었다. 같이 간 조카 이야기로는 이곳은 분위기가 좋아 김해에서 젊은이들에게 유명한 곳이란다. 조카는 카페를 방문했던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홍보를 해 지역에 알려지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카페 말고는 별로 특별한 게 없는 동네에 젊은이들이 찾아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즈음부터 동네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연이어 들어섰고, 봉황동과 신생 골목상권의 대명사인 서울의 경리단길이 합쳐진 ‘봉리단길’로 불리게 됐다.

    예전 봉황동(현재 회현동)엔 ‘장유가도’라고 해서 김해시내에서 장유로 가는 버스가 다니던 길이 있었다. 이 장유가도가 지금의 봉리단길이다. 이곳은 세월이 흐르면서 버스가 다니지 않고 개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거기다 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도 학생이 없어 아파트가 많은 인근 동네로 옮겨갔다. 가겟세가 싼 때문인지 곳곳에 점집들이 생겼다.

    그러던 중 오래된 집과 건물로 이뤄진 평범하고 조용하던 이곳에 카페 등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동네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큰형 친구 집인 정미소는 피자 등을 파는 맛집이 됐는데, 가게 내부에 정미소 설비를 그대로 둬 눈길을 끈다. 또 동네 일부 집들은 음식점과 옷가게, 사진관 등으로 바뀌었다. 동네에는 기원 전후부터 가야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조개무지인 봉황동(회현리)패총과 옛날 가락국 때 황세장군과 여의낭자의 슬픈 사랑 이야기의 배경인 봉황대와 공원, 그리고 산책로가 갖춰진 해반천도 있다.

    이곳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평일에도 거리에서 젊은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주말에는 가끔 행사도 열린다. 얼마 전까지는 큰길가에만 가게들이 생겼는데 이젠 큰길 안쪽 골목에도 가게들이 생기고 있다. 또 오랫동안 방치된 집들도 가게를 열기 위해 공사를 하고 있다. 김해시는 최근 이곳의 도로명을 김해대로 2273번길’에서 역사와 설화가 담겨 있는 봉황대 고유 지명을 살려 ‘봉황대길’로 변경했다. 또 시와 주민과 가게 주인들이 협력해 도시재생사업도 벌이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동네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개성 있는 가게들도 있고, 동네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차가운 도회적 분위기가 아닌 정겹고 아기자기함이 느껴지는 동네 모습이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으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봉리단길의 원조 격인 서울 경리단길이 침체돼 부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큰 인기를 누렸던 경리단길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까닭을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봉리단길로 이름이 알려진 봉황대길은 경리단길이 겪은 침체 과정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수수하면서도 정이 가는 동네로 오래도록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란다.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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