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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 씨

화상으로 생긴 상처, 봉사로 치유했죠

  • 기사입력 : 2019-10-10 21: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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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일 김해시 노인종합복지회관 내 무료급식소에 유독 다른 생김새를 가진 자원봉사자가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5월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에 등극한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41)씨이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비얀트씨는 배식 봉사를 하며 땀을 뻘뻘 흘렸다. 셔츠가 젖을 정도로 일을 하면서도 비얀트씨는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빈 그릇을 나르고 식사하러 온 어르신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외국인의 유창한 한국말 안내를 받으며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순간 의아해하면서도 이내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냈다.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에 등극한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씨가 노인종합복지회관 내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에 등극한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씨가 노인종합복지회관 내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함께 일한 한 자원봉사자는 “비얀트씨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해낸다”며 “매우 성실하게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인들도 쉽지 않은 꾸준한 봉사활동을 그것도 타국에서 열심히 하는 이유를 비얀트씨에게 들어봤다.

    비얀트씨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올해부터다.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좋지 않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얀트씨는 김해 주촌면의 한 공장에서 포클레인 캐빈(운전실) 용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작업 중에 팔과 다리에 큰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산재처리는 받았지만 치료를 위해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치료와 회복에 6개월이 소요됐고, 치료 후반부에는 일이 없는 대신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올해 초 봉사활동을 하기 전까지 비얀트씨는 하루 종일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에 등극한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씨가 노인종합복지회관 내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김해시 첫 외국인 자원봉사왕에 등극한 스리랑카 출신 비얀트씨. /성승건 기자/

    봉사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비자 연장을 위한 것이었다. E-7-4비자 (숙련기능인력점수제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연간 200시간의 봉사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김해시자원봉사센터에 직접 문의를 해 자원봉사 자리를 알아보고 바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첫 봉사활동은 매주 1회 동상동과 서상동 외국인밀집지역 야간 방범활동이었다. 이후 가야문화축제 준비 활동, 무료급식소 봉사활동 등으로 확대됐다. 첫 시작은 매우 현실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봉사활동이 비얀트씨 인생을 훨씬 윤택하게 만들어줬다고 한다.

    비얀트씨는 “원래는 시간이 남고 비자 연장을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자원봉사를 하다 보니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삶의 재미를 느끼게 됐다. 봉사활동이 몸과 마음이 아팠던 것을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이제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비얀트씨가 가장 큰 기억으로 간직하는 봉사활동은 지난 4월 열린 김해 가야문화축제의 부대행사인 ‘세계화합 김해줄땡기기’에 쓰일 초대형 새끼줄을 만드는 일이었다. 당시 비얀트씨는 다른 자원봉사자와 함께 2주일간 매일 새끼줄을 꼬았고, 화상 부위가 아직 완쾌되지 않았던 터라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지난 3월 비얀트씨가 김해시 가야문화축제에 쓰일 대형 새끼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비얀트씨/
    지난 3월 비얀트씨가 김해시 가야문화축제에 쓰일 대형 새끼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비얀트씨/

    비얀트씨는 “화상 입은 손과 손목이 많이 아팠지만 아저씨들이랑 막걸리를 마시며 고통 속의 재미를 맛봤다”며 “내 키보다 더 큰 새끼줄 더미를 보고는 큰 성취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당시 2주간 매일 봉사활동한 것이 크게 작용해 비얀트씨는 김해시 3월 봉사왕에 선정됐다. 3월 한 달에만 총 18회, 103시간 봉사활동 기록을 세웠다.

    비얀트씨는 이미 필요한 봉사시간 기준에서 20여 시간 초과 달성했지만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한다. 현재 목요일 방범활동, 금요일 무료급식소 봉사, 일요일 동상동 일대 청소 등 주 3회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비얀트씨가 김해시 가야문화축제에 쓰일 대형 새끼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비얀트씨/
    지난 3월 비얀트씨가 김해시 가야문화축제에 쓰일 대형 새끼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비얀트씨/

    비얀트씨는 “모두 집계되진 않았지만 봉사활동 시간은 이미 220시간이 넘었다”며 “한국 사람들과 같이 봉사하는 것이 좋다. 친구들에게도 봉사활동을 추천하고 있고 같이 봉사활동하는 사람들 모두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비얀트씨는 공장 일과 봉사활동으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움직이면서 즐겁다고 하지만 마음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비얀트씨는 2008년 5개월 딸을 뒤로하고 처음 한국에 왔다. 2008년 한국에 와서 2년간 부산에서 일을 했고 이후 2010년부터 지금까지 김해로 옮겨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중간에 2013~2015년 2년간 스리랑카에 있었던 기간을 빼면 아내와 결혼한 지는 14년이 됐는데 그중 9년은 떨어져 지낸 셈이다.

    그는 2008년 한국에 왔다가 2013년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갈 때까지 가족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5년 후 처음 만난 딸은 훌쩍 큰 어린이가 돼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2015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며 가족과 이별해야 했고 지금은 딸은 12살, 둘째 아들은 6살이 됐다.

    그는 “지금 일하고 있는 회사 사장님이 배려를 해줘서 작년에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딸이 와락 안기는 순간을 잊지 못한다”며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아내와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지만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보통의 한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소박하다.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는 “꿈은 오직 하나이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싶다”며 “김해에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도 있고 다양한 외국인 상점도 많아서 외국인이 살기에 좋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해에서 가족과 사는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얀트씨는 이런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당분간은 가족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지난 6개월 동안 화상치료를 위해 일을 하지 못해 자금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얀트씨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가 부산에서 일을 할 때는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매캐한 용접 연기가 자욱한 좁은 공간에서 일을 했고, 연기가 심할 땐 옆에서 일하는 사람도 잘 안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고된 노동 끝에 지금은 용접에 완전 숙달됐다고 말한다.

    비얀트씨는 “부산에서 일할 때는 정말 어렵게 용접을 배웠고 상당히 힘든 작업의 연속이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작업 환경이 훨씬 좋아졌고, 과거 고생하며 일했던 것 덕택에 이제는 눈 감고도 용접할 수 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면 충분한 돈을 모아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웃어 보였다.

    조규홍 기자 h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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