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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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자격증 38개 보유 신영용씨

열 번 찍어 안 넘어오는 자격증 없습디다
중 3때 아버지 쓰러지며 집안 기울어 진학 포기
간호·농사 돕다 무작정 상경해 밥벌이 발버둥

  • 기사입력 : 2019-10-17 2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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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력하고 안되면 또 노력하고, 도전하고 안되면 또 도전하고, 그러면 반드시 성공한다.’ 선인들 말씀이 아니라 신영용(69) 부산지식공유 경제연구소장의 말이다.

    부산 남구 용호동에 사는 신영용 소장은 소위 선망의 대상인 자격증을 무려 38개를 현재 소유하고 있는 신출귀몰한 달변가로 목공기사에서 가스기사, 냉동기사, 보일러기사, 배관기사, 자침기사, 요가지도사, 논술지도사, 한자지도사, 음악치료사, 스피치 지도사 1·2급, 합기도 3단, 우슈 1단, 유도 2단, DIY 카운슬러(counselor), 아로마 테라피스트 2급 및 향기요법 사이드바이저, 건강박수치료사 1급, 웃음치료사 2급, 웃음건강치료사 1급,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2급, 노래지도강사, 자기주도학습 지도사, 스토리텔링리딩 코치, 동화구연 지도사 3급, 자동차운전면허증 1종, 한국한자속독강사 자격증, 노후생할설계사, 심리상담사, 가족상담사, 마술지도사, 예술융합교육 지도사, 스포츠스태킹 코치, 인문학 지도사, 탈무드영재창의 교육사, 실버놀이 지도사 3급, 하브루타 잉글리쉬 지도사 3급, 미술심리 상담 지도사 1급, 스마트폰 활용컨설턴트, 청소년생할 지도사 2급 자격증 등을 소지하고 있고 지금도 태극권, 비보이, 랩, 마술, 컵쌓기 등을 취미로 하고 있는데 일일이 꼽기도 힘들 정도다.

    신영용씨가 자신이 취득한 각종 자격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영용씨가 자신이 취득한 각종 자격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생을 좌우명대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신 소장의 일생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와 영화 같은 역경의 인생을 이겨낸 소설이다.

    신 소장은 밀양 출신으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16살 당시 중3 때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꿔 포기하고 첫 고난을 맞았다.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간호를 하며 농사일까지 돕다 결국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그는 이런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평생에 가장 큰 학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부모님의 사랑과 형제간의 우애를 깊이 생각하게 됐고, 가난과 배고픔 속에서 건강의 소중함도 알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아닌 가장으로 농사일과 가사 일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서울로 갔다. 아버지가 옛날에 책을 좋아하셨는데 성공하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라고 늘 말씀하셨다고 했다.

    “정말 서울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했다. 먹고살기 위해서 방법과 수단 안 가리고 일했다. 빵공장 심부름, 구두닦이, 신문팔이, 연탄공장 심부름 등 궂은일은 다 했다. 말 안 듣는다고 조폭들한테 끌려가 구타도 당했다. 처음에는 서울서 TV기술학원에 다녔는데 짐승같이 살았다. 환경이 안 좋아 온갖 피부병에 걸려 그만두고 바로 군대를 갔다. 군에서 자격증을 몇 개 따 제대 후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등 해외에 기술자로 취업했다. 해외에서 10년 근무하고 돌아와서 특채로 식약청에서 공무원으로 잠시 근무했다. 학력이 짧고 별다른 경력도 없다 보니 어딜 가도 대접이 시원찮았다. 그래서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처음으로 딴 게 목공 자격증이다”라고 회상했다.

    어느날 ‘주역’이라는 책 한 권이 운명을 바꾸었다. 주역의 가르침대로 해 가정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마음으로 타향의 떠돌이 생활과 막노동을 하면서도 손에 책을 놓지 않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지니고 살았다.

    신영용씨가 자신이 취득한 각종 자격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영용씨가 비보이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모습.
    신영용씨가 자신이 취득한 각종 자격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영용씨가 마술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모습.

    서울에서 성공하겠다는 목표는 결국 빗나가고 고향에 돌아왔다. 서울생활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끝없는 도전의 전사로 만들었다. ‘나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을 갖고 그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 계발에 더 많은 공을 들일 수 있었다. 공부가 재미있었고 자격증 취득이 큰 희망이 되었다. 그는 “자격증을 자원이라고 생각하며 자원이 많은 사람은 많은 생각을 행동으로 변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소장은 최근에 한자 강사로 부산 시내 초등학교와 구청 사회체육센터에서도 강의하지만 학사 자격도 5개나 있다. 건축(동명대), 경영(한국방송통신대), 요가명상(원광디지털대), 한방건강(원광디지털대), 요가명상(서울디지털대) 등 열정적인 학구파다.

    그는 원래 중졸 학력자로 44살이던 1995년에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품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고등학교에 교복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워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머리에 없었다.

    그는 부지런하다. 요즘도 보통 오전 1시쯤 자고, 아침 5시에 일어난다. 틈틈이 요가와 무에타이도 배운다. 이런 생활로 타고난 약골 체력(키 165㎝, 몸무게 60㎏)을 극복한다. 그의 숱한 자격증과 섭렵하기식 공부에 대해 한 우물을 파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을 법하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두루 경험하면서 터득한 여러 가지를 융합하는 것도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처자식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가 지하철에 뛰어들고, 택시기사는 벌금 못 내겠다고 차가 다니는 도로에 눕는 세태가 너무 안타깝다.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 지금도 매일 아침에 5㎞ 걷는다”라고 건강 비결을 설명했다.

    그는 2012년부터 각종 방송에 출연해 지역내 유명인사가 됐다. 동명대, 디지털대 등서 학생들에게 각종 특강과 강연,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 등에 출연했다. “TV에 자주 출연하니 촬영이 너무 힘들고 고생했다. 더는 방송 출연을 안 하고 있다. 지금도 출연해 달라고 연락이 많이 온다”고 전했다.

    신 소장은 지금도 각종 자격증을 이용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방학이면 청소년을 위해 마술특강, 재능기부, 융합예술교육 등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산지식공유 경제연구소를 설립해 한글, 영어, 중국어, 일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마술 같은 교재도 출간해 여기저기 특강으로 정신이 없다.

    그는 또 가까운 이웃의 드라마틱한 도전적 삶과 교훈을 젊은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이색 릴레이식 특강을 강연나침반, 자격증 부자, 끝없는 도전 등의 제목으로 대학 재학생과 일반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한다.

    신 소장은 요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바로 사람들에게 ‘희망 주기’다. 나이 들어도 도전하고 역경 속에서 오히려 행복을 찾는 삶. 그의 인생을 꿰는 믿음이다.

    이처럼 7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역경이 올 때마다 큰 도전을 해 이겨내어 한 단계씩 성장한 그는 ‘38번째 자격증과 끝없는 도전’으로 희망을 전했다.

    글·사진= 김한근 기자 k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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