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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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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숙의와 경청, 그리고 숙의민주주의- 함지호(한국갈등해결센터 모더레이터)

  • 기사입력 : 2019-10-29 20: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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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올 때 저는 반대 입장이었어요. 그런데 토의하다 보니 찬성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어요. 오히려 판단하기 어려워졌지만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빡신’ 토론회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는, 그 3일간의 공론화‘를 마치며 소감나누기 시간에 한 참여자가 했던 말이다. 이것이었다! 공론화가 무엇인지, 공론화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그 가운데를 찌르는 말이었다. 의제는 ‘창원 스타필드 입점찬반 공론화’이었으니 외견상 찬성 측 반대 측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찬성도 없었고 반대도 없었다. 찬성 의견을 가진 사람도 반대 의사를 밝힌 사람도 완고한 진영이 아니었다.

    찬반의 생각은 흐르는 물이었다. 처음에는 색깔이 다른 하나의 물이었으나 3일간의 시간은 서로를 섞이게 만들었다. 현실의 모습을 띠어야 하는 까닭에 찬반 의사를 설문지에 표기했고 그 결과는 언론보도에 따르면, 찬성이 71%, 반대가 25%의 결과로 나타났지만 진실은 71과 25의 숫자에 있지 않다. 71에도 25가 숨어있고 25에도 71이 스며들었다. 진실은 71, 25와 유보의견을 밝힌 3% 모두이다. 당연히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참여한 161명 모두가 승자였다. 참여단 모두가 창원스타필드 측에게 소상공인, 창원시민과의 상생이라는 엄중한 숙제를 부과하였다. 진실은 이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숙의민주주의이다! ‘경청, 숙의’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창원시민들은 그 말의 무게만큼 진지하게 토론했고 가슴으로 경청했다. 2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창원시민참여단은 나이, 학력, 성별, 지역을 떠나 더 나은 창원의 미래, 더 풍성한 창원의 삶을 위해 같이 고민하고 같이 대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모더레이터(Moderator)’로 이번 공론화에서 한 역할을 맡았다. 모더레이터란 회의에서 토론을 진행하고 분쟁을 중재하며, 유용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하여 문제 해결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단순히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참여자 토론의 결과가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모더레이터는 긴장한다. 참여자도 모더레이터도 말의 힘을 실감하는 까닭에 모더레이터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예민하게 의식한다. 그러면서도 논의의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지지 않게 만드는 역할도 해야 하므로 3일간 과정에서 긴장을 놓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3일간 일정은 고생스러웠으나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의 말이 의례적 가식이 아님을 마음으로 느낀다. 이런 시민들이 있는 한, 창원은 지금의 어려움을 거뜬히 넘어설 것이다. 이렇게 절제되고 수준 높은 시민들과 모더레이터로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국민이어서 감사하다.

    함지호(한국갈등해결센터 모더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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