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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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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팀 미팅(Team Meeting)- 김정현(진해 출신 캐나다 초등교사)

  • 기사입력 : 2019-10-31 20: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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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 멀쩡한 애를 병신을 만드는 거야 뭐야. 남자 애들이 어릴 때 다 산만하고 그런거지. 서명을 하라고? 뭐, 정신과 의사? 야~ 빨리 일어나라. 집에 가자.”

    한인 아버지가 옆에 앉은 아내에게 소리를 지른다. 학교 한편의 작은 방에는 학생의 부모, 담임, 교장, ESL 교사, LST(Learning Support Teacher), 심리학자(Psychologist), 언어치료사(Speech Therapist) 그리고 통역사(Interpreter)가 앉아 있다.

    5학년 남자 아이가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인 것 같다고 학교에서 미팅을 요청한 것이다. 처음부터 PDT(Program Development Team) 미팅에 나온 것조차 기분 나빠 보였던 아버지는 전문가의 진단을 받겠다는 동의서에 감정이 격해지더니 급기야 약을 권하는 담임에게 발끈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격앙된 분위기에 놀란 교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학생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수업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아이들의 얼굴이나 성격이 다 다르듯 이 학생의 뇌에서 작동하는 기능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뿐이에요. 저희가 오늘 모인 이유는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원인을 전문가의 관찰을 통해 밝혀내고 고등학교에 성공적으로 진학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데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결국 자기 아이를 위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그 뒤로 이어진 수차례에 걸친 미팅에는 학생의 엄마만 참석했다.

    캐네디언 가족들과 다른 점이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아이가 보였던 이상한 점들을 다 얘기한다. 내 패를 먼저 다 꺼내놓고 이러하니 당신들이 전문가들을 동원해 도와달라고 한다. 또한 아이에게 전적으로 집중한다. 아이를 옆에서 관찰하고, 아이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부모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말고는 결국은 부모의 선택일 뿐이다.

    가족. 한 배를 타고 일생을 함께 가야 하는 일원이다. 한 사람이 힘들어서 젓던 팔을 쉬면 잠시 방향이 틀어진다. 너무 힘들다며 한 사람이 노를 놓쳐 버리기도 한다. 괜찮아. 내가 가져온 여분의 노를 줄게. 힘들면 우리 좀 천천히 갈까? 우리는 가족이야. 가족은 한 방향을 보고 함께 가는 사람들이지. 누군가 힘들 때 야단치고 잔소리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고 도와주는 사람들. 우리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Team Meeting을 하자. 남이 알고 소문낼까 미리 두려워하고 창피해하지는 말자. 그러는 사이 우리 자녀들은 엄마 아빠를, 가족을 아군이 아닌 적군으로 여기며 평생 미워하면서 성장할지도 모른다.

    김정현(진해 출신 캐나다 초등교사)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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