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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항룡유회(亢龍有悔)-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19-11-04 07: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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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곤 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섭리를 몸으로 깨친다. 산이 높으면 골짝도 깊다. 흥망성쇠를 순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치받으면 동티나는 법이다. 권력의 부침도 흔히 등산에 빗댄다. 정상에 오르는 길은 험난하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수록 성취감은 배가한다. 하지만 환희와 희열의 시간은 짧다. 정상에 선 이후부터는 하산이다.

    ▼웬만큼 산을 안다는 이들은 한결같이 하산길 안전을 강조한다. 내려가는 길에 방심하면 오를 때보다 몇 배 더 위험한 난관에 맞닥뜨린다는 경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 때인 2004년 5월 연세대 특강에서 ‘최고 권력’의 속성을 산행에 빗댔다. 그는 “등산은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더라. 잘 하산하려면 정상의 경치에 미련을 갖지 않아야 한다. 정상의 경치는 좋기도 하지만 골치 아픈 것도 많다”고 했다.

    ▼주역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내려갈 길밖에 없음을 후회한다’는 뜻이다.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간 자가 교만을 경계하지 않으면 실패해서 후회한다는 비유다. 승천하려는 잠룡(潛龍)이 현룡(現龍), 비룡(飛龍)을 거쳐 최고봉에 이른 단계가 항룡이다. 공자는 “항(亢)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존재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지위가 높아져도 늘 몸을 낮추고 삼가라는 얘기다.

    ▼오는 9일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 절반이다. 집권 3년 차에는 그동안 국정운영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이 넘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역대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숱한 정치 고비를 맞았다. 권력형 비리, 대형사고 등 적지 않은 레임덕 증후를 자초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경계해야 할 허물은 오만과 독선이다. ‘등산은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 권력의 변곡점에서 그 의미를 더하는 경구다.

    이상권 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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