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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종소리 울려퍼지고- 유희선(시인)

  • 기사입력 : 2019-11-07 20: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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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 모 신문을 넘기다 보니 새문안교회 설계로 ‘아키텍쳐 마스터 프라이즈’를 수상한 이은석 교수와 그에 관련된 기사가 있었다. 요즘엔 한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많이 짓지 않는다고 한다. 42개 부문 수상작 중에서도 새문안교회가 유일한 교회건축이라고 한다. 유럽의 대성당 시대가 우리나라 교회에 도래한 것일까? 사실 나는 그 건축의 예술성이나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지하 5층, 지상 13층이라는 거대한 규모에 관심이 가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십자가가 걸린 가장 높은 곳의 종탑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종소리가 사라졌다. 가끔 그런 얘기를 듣긴 했었지만, 막상 우리 동네 성당 종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서운함이 컸다.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종소리쯤이야 별로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추억의 조각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불교 집안에서 자랐던 나의 유년의 집 근처에는 혜화동 성당이 있었다. 그곳은 내게 신비한 곳이었다. 친구 따라 동네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나 성탄절 행사에는 한두 번 갔었지만 성당은 미지의 세계였다. 성당 외벽에 조각된 성경 말씀과 종소리, 누군가의 손에 길게 늘어져 있던 묵주 같은 것들은 이 세상의 것들이 아닌 것 같았다. 골목길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던 어린아이의 무구함 속에 아무도 모르게 씨앗이 뿌려졌던 것 같다. 나는 내 발로 이십 대 초반에 성당을 찾아갔고 지금까지 그 발걸음은 이어지고 있다. 해질녘 동네 뒷산을 산책하다가 멀리 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면 어릴 때 추억이 아슴푸레 떠올랐다. 그런데 그 종소리가 누군가에게는 공해이고 소음이라고 민원이 들어와 두어 해 전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동네 어귀를 한 바퀴 돌고 하늘로 올라가던 종소리는 이제 종탑에 갇혀버렸다.

    그런 상황임에도 새로 세워진 저 거대한 교회의 종탑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일까? 교회의 부속물로서 상징이며 장식일까? 언제 저 종소리는 울려 퍼질까?

    티비 프로 ‘비긴어게인’이라는 길거리 공연 중에 갑자기 종소리가 울려 연주가 중단되는 해프닝을 몇 번 보게 되었다. 아, 저곳에는 아직도 종소리가 울리고 있네….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오른 저 여행지에는 사라지는 것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노트르담 성당에 화재가 났을 때는 사고 후 48시간 시점에 프랑스의 93개 대성당에서는 동시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위로와 화합의 마음으로 일치되던 아름다운 마법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거슬러 우리나라 3·1만세 운동 때에도 교회 종소리는 타종과 함께 그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만세”를 외치는 함성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 장엄하게 세워진 새문안교회는 어떤 역할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다할 수 있을까? 이은석 교수는 교회를 설계할 때 어머니의 품을 상상하며 재현했다고 한다. 교회의 종탑 부분은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보이게끔 그 건물의 랜드마크로서 심혈을 기울인 것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헐벗은 영혼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인 천양희 시의 한 구절처럼 울려 퍼지는 종소리 그 뒤편에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과 같은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유희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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